위궤양과 감자수프

나의 꿈은 집에서 수프 만드는 사람

by 버들유




일본에서의 먹부림이 부담이었던 걸까 아니면 집에 도착해서 급하게 시켜 먹은 고추장비빔밥이 문제였나

그것도 아니면 일본에서 매일 챙겨 먹은 소화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예고도 없이 찾아온 생리통에 빈속에 털어먹은 진통제가 범인이구나.

지금 돌이켜보니 위가 녹지 않고 붙어있는 것만으로 감사해야겠다.


짧은 여행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출근을 한 날. 아침부터 조금 불편했던 속이 오후가 되니 불에 타는 듯했다. 숨도 못 쉴 만큼의 고통을 안고 겨우 동네 내과를 갔다.

불친절했던 데스크 직원분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던 어르신들. 그 가운데에 배를 움켜잡고 쓰러져 있던 나는 내 이름이 불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나 친절하지 않은 의사의 진단명은 위궤양. 3주분의 약을 처방할 테니 그때도 낫지 않으면 위내시경을 받으라는, 내 고통이 무색해질 만큼 짧았던 진료를 받고 나오니

소나기가 한참 내리고 있었다. 우산도 못 챙겼던 나는 비가 그치길 기다릴 여유는 없었기에 아래층 마트에 들러 하나 남은 23,000원짜리 우산을 들고 나왔다.

평소였다면 고민도 안 하고 내려놨을 우산을 고통에 눈이 멀어 덜컥 사버렸다.


너무 아프고 서럽고 불쾌하고 속상했던 고통의 하루를 보내고 이틀 뒤

살기 위해 꼬박꼬박 놓치지 않고 챙겨 먹은 약 덕에 조금 생기가 생겼다. 떡볶이, 마라탕, 김치찌개, 겉절이… 나는 평소에 매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하필 엄마는 왜 지금 김장을 했을까. 나는 왜 먹지도 못하는 꽁치김치찌개, 김치어묵국, 제육볶음을 맛있게 만들어버릴까.

나 대신 맛있게 먹는 오빠의 먹방을 직관하며 야채 죽 한 숟갈에 김치 대신 단무지 하나.

단무지처럼 심심한 며칠을 보내며 ”위 보호에 좋은 음식“ 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검색해 본다. “감자, 무, 우유, 양배추” 보다 보니 입안에 머금어진 맛이 있었다.

’ 감자수프!‘ 난 평소에도 맛집을 찾아다닐 정도로 수프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 수프라면 매일 매끼에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3분이면 완성되는 간편식들은 불필요한 식자재들이 많이 첨가되어 있다. 그래 까짓 거 한번 대량으로 만들어보자.

다행히 며칠 전 사뒀던 제철 감자 한 박스가 있었다. 드라마 정주행하며 깎고 또 깎고, 감자 손질을 마치고 양파와 함께 볶아준다.

물과 오트밀크를 넣어 푹 익혀 준 뒤 핸드믹서로 잘 갈아준다. 생크림을 살짝 넣고 잘 저어주면 완-성.


세상 부드럽고 고소한 나의 첫 수프.

이름하여 [ 감자오트슾 ] 후추 톡톡에 뜨끈한 한 숟가락을 맛본다.

내 손에서 이런 맛이 나오다니. 감격하며 또 한 숟가락.

어쩌면 내가 억울하게 걸려버린 위궤양이 불쾌했던 병원방문이 속상했던 우산구매가, 모두 이 감자수프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한 그릇 덕에 마냥 서러웠던 일주일을 조금은 사랑하게 되었다. 어째서 나는 감자수프 한 그릇에 이토록 감격하는 걸까.

생각해 보니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수프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집에서 수프도 만들고 잼도 만들고 겨울에 먹을 곶감도 말리는, 구멍 난 잠옷을 고쳐 입고 삐뚤빼뚤한 모양의 물 잔 하나 정도는 만들 줄 아는 사람.

빠르고 편하게 사는 것보다, 느리지만 단단한 나만의 일상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집이 좋지만 집에선 뭐든 귀찮은 내가, 이토록 수고스러운 홈메이드 수프라니. 조금 더 내가 상상한 나의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정도 기분이라면 감격할만하지 않은가.

문득문득 나를 찾아가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이럴 때마다 난 나를 대견해하며 칭찬해 준다.

감자수프에 대견해하는 나를 또 사랑스러워하는 나.

어쩌면 나르시시즘 증후군에 빠진 걸 지도 모르겠지만 나를 진정 아끼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 모든 사랑의 시작이라 생각하기에, 충분히 느끼고 다듬어 다른 누군가, 다른 무언가에도 자연스럽게 이 사랑이 흘러갔으면 좋겠다.

오늘의 감자수프를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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