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 신고 자장면 먹는 사이

기념일 같은 매일의 특별함을 찾아서

by 버들유


일주일 중 가장 달콤한 하루. 휴일인 월요일이다.

오늘은 계획 없이 정말 쉬는 날이다.

늦잠도 자고 유일한 할 일이었던 당근 거래를 하고 빵집에 들러 요깃거리를 샀다. 계란 프라이 두 개

토마토 주스 한잔 그리고 따끈한 호두깜빠뉴.

우리만의 간단한 브런치를 즐기고 늘어지게 쉬어보며, 느긋하게 집안일도 하나씩 하다 보니 금세 출출해졌다. 며칠 전부터 짜장면 노래를 부르던 오빠가 생각나 오늘은 내가 한턱 쏘기로 하고 집 근처

중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눌러쓴 모자에 슬리퍼 차림으로 들어온 식당.

이른 저녁으로 식당 안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빠르게 나온 짜장면 하나. 곱빼기 하나.

탕수육까지 먹음직스럽다.


배가 많이 고팠던 오빠는 말도 없이 열심히 먹는다.

먹느라 바쁘게 움직이던 입이 조금 느려지더니

“우리 진짜 가족 같아”

”응? 갑자기? “

“늦잠 자고 배고플 때 슬리퍼 신고 동네 식당에서

외식하는 거, 가족들만 할 수 있는 일이잖아”

“그런가? 사실 나도 어제 편지에 ‘우리가 이제 진짜 가족같이 느껴져’라고 썼는데! 통했다! ”

“주지도 않았으면서”

“히히”


어제는 우리의 13주년이었다.

오빠한테 주려고 한번 적어본마음은 종이에

옮기질 못했다. 별 내용도 아니었기에 말로 전해도 충분하겠지 싶었다.






어젯밤이었다. 일주일의 수고를 푸는 날.

“이번 주도, 오늘도 수고했어”

“오빠도”

배달음식 하나에 맥주잔을 부딪히며 남아있을

고됨을 털어낸다.

항상 같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한 그런 날이었다.

“13년 전 그 마음 그대로 사랑해 “

“나도, 고마워 “

그럴싸한 선물도, 괜히 있어야 할 케이크도,

편지도 없지만 그런대로 로맨틱한

우리의 13주년 식탁. 진심을 그대로 표현하고 감사하게 받을 수 있는 우리 사이에 다른 수단은 필요 없다. 더 사랑하고 더 표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의 단순하고 단단한 행복.


요즘 한 번씩은 들어봤을 [행복의 역치]

낮은 역치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행복은 우리에게

안정을 가져다준다. 서로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고 함께 산책을 하면 세상을 다 누리는 것만 같으니,

다른 욕심이 절로 없어진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모두 어쩌다 만난 행운 같은 것이지 결코 나의 것이 아니라 생각하며, 행운이 가져다주는 요행에 기대어 행복을 좇지 않기로 했다.

주어진 것에 더 깊게 집중하는 것으로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값을 따질 순 없지만 적어도 오빠와 나의 역치의 세기가 같은 것 같아 다행이다. 만약 기울기가 컸다면 서로를 유난스럽고, 답답해하며 탓하다 세월을 낭비했을지도 모른다.



낮은 것을 들여다보고 작은 것에도 감동받을 수 있는 마음을 우리는 서로를 보고 배우며 자라고 있다.

함께 보내는 아무렇지 않은 날들의 찬란함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우리의 세상은 더 무한한 사랑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걸 13년이 된 지금 부부 됨으로 함께 할 수 있어 좋다.

그 어느 때보다 감사하고 로맨틱했던 8월 24일을 기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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