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물음표이다

by 디베짱

“나는 OOO이다.”

파타야에서 열린 글쓰기 수업 첫날, 우리에게 주어진 첫 질문이었다. 단 한 문장, 단 한 칸을 채우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쉽게 펜을 들지 못했다. 이름을 적듯 술술 써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던 문장이 이상하게도 목에 걸렸다.

엄마의 딸이고, 남편의 아내이며, 세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 문장들 뒤에 이어져야 할 ‘나’라는 말은 쉽게 붙지 않았다. 역할로 설명되는 내가 아닌, 그 역할들 사이에서 살아온 ‘나 자신’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그날, 그 문장을 완성하지 못한 채, “나는 물음표다”라고 적었다.

시간에 떠밀려 대신 써 내려간 한 단어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은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운동을 하고, 샤워를 마친 뒤에도 그 단어는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자리를 잡았다.


나는 언제부터 물음표로 살아왔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오랫동안 나를 묻지 않는 쪽을 선택하며 살아왔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늘 급했고, 가족을 돌보는 일은 늘 우선순위였다. 질문은 나중으로 미뤄도 되는 것처럼 보였고,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사치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 시기였다.

그 대신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며 살았다. 요가, 필라테스, 춤, 악기, 언어, 공예,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까지. 배우는 일은 늘 나를 바쁘게 만들었고, 그 바쁨 속에서는 적어도 ‘나는 지금 괜찮다’는 기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배우는 일이 많아져도 정작 내 속은 비어 있다는 느낌은 채워지지 않았다. 무엇을 잘하게 되기보다는 그저 무엇이라도 붙잡고 있어야 마음이 놓였던 시간들이었다.

이제 내 나이 오십을 넘겼다. 엄마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안 계시고, 아이들은 제각각 각자의 자리를 찾아 떠났다. 오래도록 나를 설명해주던 딸, 엄마와 같은 이름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간 자리에 그제야 질문이 또렷해졌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이 이야기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어서 쓰는 기록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더 이상 그 질문을 미루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한 중년 여성의 인생 중간 정리 노트에 가깝다. 11년동안 살다가 이제 마무리를 해야하는 파타야 생활을 돌아보는 일은, 내가 물음표로 살아온 시간을 처음으로 정면에서 바라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오늘의 나는 여전히 물음표에 가깝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물음표를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느낌표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이 글은 그 느낌표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작은 표시이자, 더는 물음표로만 살지 않겠다는 조용한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