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이틀전 파타야에 도착하다

by 디베짱

2014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날 우리는 태국 파타야에 도착했다.

그 무렵의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세 살 터울의 세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겨 키우고 싶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내 일을 손에 놓고싶지 않은 욕심에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 역시나 글을 쓰는 일이었다. 1년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방송을 보고 듣고 심의 의견 보고서를 작성하고 원고 넘기고 회의하는 작업의 반복을 10년하고도 두 해를 더했다.

임신을 해서도, 출산을 한 후에도 칭얼대는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고 놀아 달라는 아이에게 기다려 달라는 말을 반복하던 힘든 나날을 이어온 결혼 15년 차의 워킹맘으로서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맏며느리로 갑자기 떠안게 된 시댁의 제사와 명절, 생신상 차림에 조금씩 꾀가 나기 시작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쉬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했지만 도망치거나 그 생활을 완전히 끊어내고 싶은 것은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점점 힘에 부치던 중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주어진 3년의 해외생활은, 때마침 힘겨운 나에게 찾아온 달콤한 휴식같은 시간으로 느껴졌다. 하늘에서 내려준 동앗줄이라는 생각에 아무런 걱정도 대비도 없이 해외생활을 결정했다.

안식년이라는 말이 내게 정말 그럴듯해 보이던 시절이었다.

이처럼 휴식, 떠남, 쉼 이라는 키워드로 받아들인 나의 해외생활의 시작이었기에 살림살이도 크게 챙기지 않았고, 아이들이 다니던 학원도 미리 정리하며 마치 빡빡한 한국생활을 벗어나 우리에게만 주어진 원더랜드에 갈수 있는 티켓을 얻은 양, 그렇게 잠시 다른 세상으로 이동해 본다는 느낌에 들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관광휴양 1번지라 불리는 태국 파타야였다.

남편의 첫 출근과 아이들의 학교 첫 등교는 모두 1월이었지만 우리 가족은 추운 한국의 겨울을 피해 그해 크리스마스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로 보내자며 들뜬 마음에 서둘러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었다.

방콕 공항에 내리자마자 한국에서 입고 온 겨울옷이 무겁고 둔하게 느껴질만큼 공기는 후텁지근했고 냄새도 낯설었다. 쉽게 친해지지 않을 것 같은 낯설고도 어색한 공기와 냄새였지만 그 때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았다.

태국에서의 첫 집은 에이전트의 도움으로 얻은 수영장이 딸린 이층집이었다. 우리의 형편에 비해 과분할 정도로 크고 화려한 집이었지만 그때의 우리는 그 사실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해외생활에는 무지했고, 해외생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해 크리스마스는 말 그대로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였다.

고등학교 때 즐겨듣던 대중가요 중에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었는데, 그 제목이 주는 반어법적 표현에 이상하게도 가슴이 설렜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를 설렘 가득한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보낸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만들고 캐롤을 틀어놓은 후에 아이들과 함께 수영장에 뛰어들어 물놀이를 즐기고, 특이하게 색깔이 노란 수박을 먹으며 마치 여행지인지 천국인지 모를 행복감에 젖어 우리가족은 웃고 떠들었다.

그날, 옆집에 살던 집주인의 아들 존이 우리 아이들을 보러 놀러 왔다. 또래의 아이들이 이사 왔다는 소식에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었다. 해외에서 처음으로 만난 외국인 아이여서 우리 역시 호기심 가득한 마음 반 어색한 마음 반이었지만 아이들은 말이 안통해도 금세 친해졌다. 함께 수영하자고 하자 존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추워서 싫어.”


태국이 춥다고? 우리는 그 말에 박장대소했다.

11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12월과 1월에는 수영장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추워서 싫다.”


어느새 내 몸은 태국의 미세한 계절 변화까지 알아차릴 만큼 이곳에 익숙해져 있었다. 잠시 방문자로 도착했던 파타야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생활이 되어갔다.

3년은 5년이 되었고, 5년은 다시 10년을 넘겼다. 일을 손에서 잠시 놓은 나는 이제 할일을 더 찾을 수도 없는 긴 시간의 흐름이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자랐고, 점점 나는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에 점점 익숙해졌다. 엄마로, 아내로, 해외에서 교민으로서 살아가는 동안 정체성은 굳이 묻지 않아도 되는 질문처럼 뒤로 밀려 있었다.


그날 파타야에 도착한 나는, 이곳에서 11년을 살게 될 줄 몰랐다. 그리고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즐기며 행복해하던 모습은 다시 코끝이 쨍하게 추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그리워하게 될 줄 몰랐다. 더불어 그 시간이 나를 물음표로 만들어 놓을 줄도, 언젠가 그 물음표를 정리하기 위해 다시 글을 쓰게 될 줄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날은 이미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던 첫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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