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셋을 데리고 온 해외 생활

로망은 없었다.

by 디베짱

아이 셋을 데리고 해외로 나가 3년쯤 살고 온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대개 부러운 반응을 보였다.


“아이들 어릴 때 외국에서 살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영어도 배우고 시야도 넓어지겠다.”


그 말들 속에는 늘 ‘로망’이라는 단어가 숨어 있었다. 나 역시 해외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 시간이 ‘드림’처럼 달콤할 거라고 믿었다. 해외라면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다녀온 태국 여행이 전부였던 해외살이 문외한이었으니, 뭘 몰라서 용감했고 철이 없어서 기쁘기만 했던 것 같다. 오죽 몰랐으면 해외에 나가면 한국의 지긋지긋한 입시 경쟁쯤은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출국을 반년 앞두고 아이들이 다니던 영어 학원과 수학 학원부터 정리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국제학교 수업에 대비해 영어는 물론 영어로 배우는 수학 용어까지 미리 준비해 오고 있었고 심지어는 대학 입시전략을 짜오기도 했다.


실컷 놀면서 배우는 것이 해외살이의 진짜 로망일 거라는 내 기대는, 그러나 며칠 만에 무참히 깨졌다. 한국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차분하게 해결하던 내가, 비행기 6시간을 타고 왔을 뿐인데 갑자기 벙어리가 되었다. 영어라고는 교과서에서 배웠던 인사말이나 간단한 회화가 전부였고, 태국어는 문자인지 그림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웠다. 2014년 당시에는 AI는커녕 번역기는 지금처럼 똑똑하지도 않아서 돌릴수록 상황은 더 난감해지곤 했다.

인자하신 시어머니 덕에 시집살이 한 번 해본 적 없는 나였지만 해외살이는 순식간에 나를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까막눈 3년의 시집살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새 학기가 되면 으레 준비할것이 많기는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일텐데, 세 아이들이 나라를 옮겨 학교에 처음 등교하니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일들은 더욱 더 쉴 틈 없이 쏟아졌다. 수영 수업이 기본이어서 수영복을 챙겨야 했고, 브레이크타임에 먹을 간식도 준비해야 했다. 교복에 신을 검정 구두, 특정 요일마다 입어야 하는 색깔 옷, 이집트 테마 수업이라며 준비해야 했던 복장까지. 문제는 그 모든 걸 어디서 사야 하는지도 몰랐다는 것이었다.

영어도 부족하고 태국어도 전혀 못하는 상황이라 물어볼 수도 없었고, 대중교통이 불편한 파타야에서는 시내로 나갈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결국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가 저녁마다 남편 차를 타고 파타야 시내 쇼핑몰을 헤맸다.


아이 셋을 데리고 해외에 나가면 자연스럽게 영어도 늘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 될 거라는 기대는 그저 로망에 불과했다. 현실은 무더운 날씨 속에서 무엇을 사야 하는지,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 고민하며 하루를 버텨내는 일이었다. 아이들 준비물과 식성, 성향이 다양한 만큼 내 목소리도 점점 높아졌고 그만큼 몸과 마음은 급속도로 지쳐갔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같았을지 모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까지는 아니었어도 분명 힘겨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 셋을 데리고 시작한 나의 해외생활의 첫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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