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생활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닳아 없어진 것은 나의 자존감이었다.
크리스마스 무렵 도착해 날씨를 익히고, 집 구조를 외우고, 동네를 한 바퀴씩 돌아보던 2주 정도는 아직 여행자에 가까웠다. 매일이 새롭고 낯설어서 불안보다 호기심이 앞섰다. 하지만 1월이 되고 남편은 출근을, 아이들은 등교를 시작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큰 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낮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아파트에서만 살던 한국 생활과 달리 마당에 수영장까지 딸린 단독주택은 화려했지만 전혀 안락하지 않았다. 담벼락은 누구라도 쉽게 뛰어넘을 수 있을만큼 낮아 보였고, 대문은 언제든 누군가 열고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남편과 아이들마저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고 나면 나는 두 손 두 발이 잘린 채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당시에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던 나는 이민사회의 중심축이 되어주는 교회를 찾지 않았고, 외국 회사였던 남편의 회사에는 한국인 선후배도 없었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연결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다섯 식구가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생활은 마치 서바이벌 게임 같았다.
그 무렵 태국은 정전이 잦았다. 전기가 나가면 어디에 물어볼 곳도, 갈 곳도 없었다. 정전이 되면 태국의 집안은 그야말로 찜통처럼 금세 더워졌지만 그저 땀이 흐르는 집 안에서 막연히 전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 날이 반복될수록 나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을 연신 손으로 훔치며 버텨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국제전화는 엄두도 나지 않아 스카이프로 친정 언니와 화면을 연결해 두는 시간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자존감은 바닥으로 내리꽂혔고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을 매일 매일 더 뚫고 내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걱정하며 택시 서비스를 예약해 주었다. 답답하면 밖에 나가 바람도 쐬고, 마트도 가고, 쇼핑몰도 둘러보라는 배려였다.
오랜만에 혼자 외출한다는 생각에 잠시 들떴다. 백화점의 멋진 식당에서 브런치를 먹고, 쇼핑을 하고, 장을 본 뒤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겠다고 계획까지 세웠다.
하지만 집 앞에서 차에 타는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다. 자신을 ‘맥’이라고 부르라며 웃던 기사는, 나에게는 낯선 외국 남성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지극히 평범하고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언어도 상황도 통제할 수 없는 그 순간의 나는 불편하고 두려움이 가득한 차안에서 그 느낌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점점 굳어갔다. 백화점까지 가는 30분이 마치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고 착해 보이는 이 아저씨가 갑자기 돌변해서 나를 이상한데로 데려가지나 않을까 하는 괜한 상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나는 그만 그 차에서 당장 내려버리고 싶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잔뜩 얼어있던 내 모습을 보며 그 기사분은 ‘그런 니가 더 무섭다.’ 할 판이었다.
결국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고기와 과일 몇 가지만을 사 들고 다시 차에 올랐다. 다음엔 어디로 갈 거냐는 기사에게 나는 “Go home”만을 반복했다. 놀란 기사가 뭐라고 더 물어도, 나는 “노, 노. 고 홈!”을 외치며 땀을 뻘뻘 흘릴 뿐이었다.
그렇게 파타야에서 혼자만의 첫 외출은 마치 납치라도 당했다 돌아온 사람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끝났다. 그러다 허탈해서 웃음이 났고, 곧이어 눈물이 쏟아졌다.
‘이 바보야.’
그날, 내 자존감은 바닥을 뚫다못해 지하 암반수까지 뚫고 내려간 것처럼 느껴졌다. 시원한 물이 터져 뿜어져나오듯 시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조금 뒤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마도 기사에게서 전화를 받은 모양이었다. 한나절 편하게 이용하라고 했는데 왜 벌써 집에 왔느냐는 말에 나는 “기사 안 딸린 차 사줘!”라며 소리쳤다.
중고차라도 좋고 아니, 똥차라도 좋으니 굴러가기만 하는 차, 내 발이 되어줄 교통수단이 간절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기사 딸린 차를 타지 않았다. 태국에서 많은 교민들이 가정부와 기사를 두고 살았지만 나는 끝내 그 방식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가정부가 오기 전 널부러진 집을 정리하고, 가기 전까지는 점심도 못 먹고 기다리는 삶이라니.
아무래도 나는, 평생 마담은 못 될 팔자였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