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어 배우기
태국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어로 몇 마디 설명할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이곳에서 나의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하는 영어도 그들이 쓰는 영어도 서로 엇나갔다. 잠시 살고 떠날 땅이라 해도 밥은 해 먹어야 했고, 물건은 사야 했다. 생존을 위해 태국어가 절실해졌다.
다행히 집으로 와서 수업을 해주는 학원과 연결되었다.
나의 첫 태국어 선생님 피야시리는 호주인 남편과 결혼해 파타야에 살고 있었고, 영어와 태국어를 함께 가르치고 있었다. 집으로 와 줄 수 있는 태국어 여자 선생님을 원했더니 그 조건에 맞는 사람이 본인밖에 없다며 직접 가르치러 와주었다. 영어가 잘 통했기에 우리 사이의 소통은 어렵지 않았다.
첫 수업에서 선생님은 말만 배울 건지 글자도 함께 배울 건지를 물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글자도 배우겠다고 했다. 글자를 알아야 문자도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재의 첫 장을 연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이게 정말 글자란 말인가. 태국어의 자모음은 대부분 동그라미로 시작해 한 붓에 끝났다. 문자라기보다는 어릴 적 하던 한붓그리기 그림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래도 무언가를 새로 배운다는 사실이 즐거워, 나는 자모음을 열심히 그려댔다.
말하기는 더 어려웠다. 우리말에는 없는 성조가 발목을 잡았다. 다섯 개나 되는 성조를 설명하는 가장 단순한 예로 태국에서는 ‘마,마,마,마,마’를 이야기한다. 우리에게는 모두 다 같은 ‘마’인데, 태국어로는 성조에 따라 개가 되기도 하고, 말이 되기도 하고, 엄마가 되기도 하고, 욕이 되기도 했다. 어쩌란 말인가 싶었다.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 집으로 와주는 피야시리는 그때의 나에게 구세주와도 같았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말벗이었고, 태국 생활을 물어볼 수 있는 유일한 현지인이었으며, 태국말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갈 곳도 없던 6개월 동안, 나는 태국어 배우기에 매달렸다. 그때 배운 태국어는 이후 11년의 태국 생활을 버티게 해준 최소한의 기반이 되었다. 유창하지는 않지만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수 있을 정도의 태국어는 생존에 충분했다. 이후에도 끈을 놓지 않고 태국어 공부를 이어가 간단한 글자 정도는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식당이나 골프장에서 태국어로 말을 하면 사람들은 으레 묻는다.
“태국말 잘하네요. 몇 년 사셨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11년을 살았다고 말하기가 조금 부끄러워진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을 보면 몇 년 만에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여전히 생존 태국어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분명한 건, 그때 태국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이곳에서의 11년은 훨씬 더 힘들고 고립된 시간이 되었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중에 태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나는 외국어를 배우는 이들의 답답함을 쉽게 헤아릴 수 있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어와 문법을 익히는 일일 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사람과 문화를 함께 이해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태국어를 배우며 몸으로 먼저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