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어 단어 안에 담긴 삶의 모습 들여다보기

싸왓디카, 마이뻰라이, 짜이

by 디베짱

태국어 단어 안에 담긴 삶의 모습 들여다보기

태국어를 배우다 보니 언어라는 것이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어 하나에 그 나라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과 태도,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을 태국에서 살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독일에서 오래 살았던 작가가 독일어 단어 속에 담긴 문화와 철학을 풀어낸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라는 책을 읽으며 문득 나도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태국에서 오랜 시간을 살았으니 태국어 단어 안에 담긴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시도로 말이다.


태국어로 삶을 이야기한다면, 나는 어떤 단어를 선택하게 될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태국의 인삿말 ‘싸왓디카(สวัสดีค่ะ)’였다.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같은 말을 쓰는 인사. 우리처럼 ‘안녕하세요’와 ‘안녕히 가세요’를 구분하지 않고, 같은 말로 오고 가는 인사를 나누는 태국 사람들의 정서가 이 한 단어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서는 예민함보다는 온화함이, 경계보다는 여유가 느껴졌다.

태국어에서 가장 애증의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 “마이뻰라이(ไม่เป็นไร)”이다.

이 단어는 괜찮아. 신경쓰지마 등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 단어가 거의 모든 상황에 거의 모든 핑계거리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잘못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너그러운 마음도 마이뻰라이(ไม่เป็นไร)이지만, 본인이 잘못한 것에도 마이뻰라이(ไม่เป็นไร)를 쓰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태국의 문화는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그렇기에 실수를 꼬집지 않고, 비난하거나 탓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웃음으로 넘기거나 마이뻰라이(ไม่เป็นไร) 하면서 지나간다.상대방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은 참 너그럽고 마음이 편해진다. 하지만 본인이 잘못한 것도 상대방이 너그럽게 이해해주기에 으레 마이뻰라이(ไม่เป็นไร)라고 하는 것은 태국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그 마이뻰라이(ไม่เป็นไร)라는 표현이 참 감사하면서도 참 얄미운 애증의 표현인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단어는 ‘짜이(ใจ)’다. 마음, 혹은 심장을 뜻하는 이 단어는 태국어에서 감정을 표현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마음씨가 좋다는 ‘짜이디(ดีใจ)’, 기쁘다는 ‘디짜이(ดีใจ)’, 성급하다는 ‘짜이런(ใจร้อน)’, 차분하다는 ‘짜이옌(ใจเย็น)’, 속이 좁다는 ‘짜이라이(ใจร้าย)’, 진심을 뜻하는 ‘찡짜이(จริงใจ)’.

‘짜이(ใจ)’’가 들어간 단어들을 듣고 있으면, 태국어가 외국어라기보다 유난히 인간적인 언어처럼 느껴진다. 감정이 단어의 중심에 놓여 있고, 그 감정을 숨기기보다는 드러내는 언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태국에서 살며 나는 이 단어들을 자주 들었고, 때로는 이해하려 애썼고, 때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언어를 통해 나는 태국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조금은 배웠다는 사실이다. 너무 서두르지 말 것, 감정을 앞세워 판단하지 말 것, 그리고 가끔은 ‘짜이옌옌(ใจเย็นๆ)’, 마음을 차분히 식힐 것.

태국어 단어들은 내 삶을 바꿔주지는 않았지만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속도를 조금 늦춰주었다. 어쩌면 그것이 이 낯선 나라에서 오래 살아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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