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지하 암반수를 뚫던 날, 눈물과 함께 터져 나온 외침 끝에 결국 내 차가 생겼다.
해외에서 그것도 태국에서 운전하게 차를 마련해 준다는 것은 남편에게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운전석은 반대고 도로 정비는 들쑥날쑥한 데다 오토바이까지 넘쳐나는 곳이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파타야에는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있지 않았고, 아이 셋의 학교와 장보기, 병원 등등 크고 작은 일들을 감당하려면 이동수단 없이 버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굴러만 가는 중고차라도 감지덕지였는데, 뜻밖에도 새 차가 생겼다.
작고 앙증맞지만 시크하고 도도하기까지 한 정열의 빨간색 경차, 닛산 마치.
사춘기 시절부터 막연하게 빨간 스포츠카를 동경해 왔던 나는 스포츠카는 아니지만 해외에서 처음 갖는 내 차를 빨간색으로 골랐다.
그 때 우리가 중고차 대신 새 차를 선택한 건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는 태국에 온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외국인이었기에 믿고 거래할 중고차 딜러를 알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 외국인은 워크퍼밋이 있어야 차를 살 수 있었고 그나마도 할부구매는 불가능해 현금 일시불만 허용되었다. 우리의 예산 안에서 선택지는 경차뿐이었다.
차를 사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진짜 시작은 차가 생긴 그 다음이었다.
운전석이 반대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몸은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차선도, 회전 방향도 한국과는 정반대였다. 차들이 많은 도로에서는 앞차를 따라가니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차가 별로 없는 한산한 외곽길에서 무심코 한국에서 하던 습관대로 운전하다가 마주 오는 차량을 보고서야 내가 역주행 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방향지시등, 일명 깜빡이를 켠다는 게 습관대로 손을 움직이다 보니 와이퍼가 작동되기 일쑤였고, 지금도 가끔은 지인의 차를 얻어탈 때 조수석에 앉는다며 운전석 문을 여는 실수를 한다. 그 모든 게 그때는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웃을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몸은 금방 적응을해서 지금은 태국에서의 운전이 더 자연스럽고 한국에 가서 운전대를 잡으면 오히려 초반에 똑같은 혼란을 반대로 겪게 된다.
또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상대방의 실수를 꼬집지 않는 태국인의 국민성이 운전할 때도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태국에서는 운전을 할 때 경적을 울리거나 위협 및 보복운전을 하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상대의 실수에 너그럽고 잘 기다려주는 태국인들의 성격은 외국인인 나같은 아줌마 운전자에게는 한없이 고마운 것이어서 자동차와 사람과 오토바이가 뒤섞인 혼돈의 태국 도로에서도 겁먹지 않고 꿋꿋하게 운전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제는 오히려 한국에 가서 가끔 운전을 하게되면 작은 실수에도 너무 쉽게 빵빵 울려대는 경적소리에 놀라곤 해, 태국의 느긋한 운전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웃고 넘길 수 없는 건 역시 행정이었다.
태국에서는 한국의 영문 운전면허증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대신 한국 면허증이 있으면 적성검사와 몇 가지 필요 서류를 구비해서 태국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데, ‘간단하다’는 말과 달리 이 과정은 정말 인내심을 시험하는 일에 가깝다. 이민국과 교통국을 몇 차례 오가야 하고, 느리고 융통성 없는 행정 절차 앞에서 몇 번이고 뒷목이 뻣뻣해지는 경험을 해야 했다. 그렇게 지칠때로 지치고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을 무렵에야 비로소 면허증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나마도 처음에는 2년짜리 임시면허를 받고, 2년 후 똑같은 행정절차를 또 다시 거친 후에 5년짜리 정식면허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다시 뒷덜미가 뻣뻣해지는 것만 같다.
이럴 때 필요한 말이 있다.
짜이옌옌(ใจเย็นๆ). 진정해.
빨리빨리에 단련된 우리의 몸과 마음이 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배워야 했던 주문이다.
왜 이 말이 그렇게 중요했는지 설명을 하려면 일단 내 마음부터 "짜이옌옌(ใจเย็นๆ), 진정해"야 할 테니, 이 쯤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음 이야기에서 자세히 이어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