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비가 하루에 백만원이라고?

by 디베짱

해외살이를 하며 가장 두려운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거나 다쳐 병원에 가야 할 때가 아닐까싶다. 한국에서는 병원에 가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동네 병의원도 많고, 언어 걱정도 없으며, 의료보험 덕분에 비용 부담도 크지 않다. 하지만 외국에서의 병원은 가는 일 자체가 이미 하나의 장벽이다. 언어 소통의 문제는 기본이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진료비가 상상 이상으로 비싸다. 그래서 태국에 사는 동안 우리에게 병원의 문턱은 자연스레 높아져 있었다.


파타야에는 외국인들이 주로 찾는 종합병원이 있다. 방콕은 물론 파타야와 치앙마이 푸켓 등 태국의 주요 도시를 비롯해 여러지역에 지점이 있고, 영어에 능숙한 의사들이 상주해 있어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은 외국인들에게는 사실상 유일한 대안에 가깝다. 문제는 비용이다. 간단한 진찰만 받아도 천 밧(3~4만원)은 기본이고 처치나 약이 추가되면 삼천 밧(약 10만 원)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태국에 온 지 이삼일 정도 되었을 때 딸아이가 귀가 먹먹하고 아프다고 했다. 비행기를 타고 온 지 며칠되지 않은 때라 그런거겠지 했는데 밤에도 잠을 깨고 아파하는 딸을 보니 응급 상황은 아니더라도 어차피 태국에 사는 동안 병원에 갈 일은 생길 테니 겸사겸사 병원 이용도 익힐 겸 방콕병원 파타야점을 찾았다.

병원은 현대식 시설에 깔끔했고 직원들도 친절했다. 접수부터 진료과 안내까지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었지만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했고 대기 시간이 무척이나 길었다. 딸은 왼쪽 귀만 아팠지만 의사는 오른쪽 귀와 코, 목까지 꼼꼼히 살펴봤고 육안으로는 문제소견이 보이지 않는다며 현미경 진료실에서 한 번 더 검사를 진행했다. 현미경 진료에서도 다행히 이상 소견은 없었다. 며칠 동안 귀가 아프다던 딸도 그날 이후로는 신기하게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다. 플라시보 효과였나?


당시 태국 병원의 진료비를 전혀 몰랐던 우리는 진료를 마치고 수납 창구로 갔을 때 청구된 금액을 보고는 입이 떡 벌어졌다. 1,300밧이었다. 의사 얼굴 한 번 보고 현미경 검사 한 번 받은 대가였다. 당시 환율로 계산해도 오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한국이었다면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몇 천 원이면 끝났을 진료였다. 그날 이후로 태국에서 사는 동안 가능하면 아프지도 다치지도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회사 의료보험이나 해외 실비보험을 준비해 오는 교민들도 많지만, 당시에는 병원비 부담과 속 시원하게 증상을 설명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병원 문턱을 더 높게 만들었다.


그러다 한 번, 학교나 직장 등 단체생활을 중심으로 지역에 노로바이러스가 번진 적이 있었다. 시기를 달리해 가족 모두 크고 작은 증상을 겪었는데, 남편과 막내아들은 상태가 꽤 심각했다. 계속 토하고 설사를 반복했고 고열도 쉽게 가라앉지 않아 더는 집에서 버티기 어렵겠다는 판단에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수액과 해열주사를 맞아야 한다며 입원을 권했다. 달리 선택의 여지는 없어 그러겠다고 하니, 안내를 하던 간호사가 바로 계산기를 꺼내 병원비 설명을 시작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 입원비가 1인당 2만 밧(약 75만원) 이라는 말에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게다가 입원실은 다인실도 없고 모두 1인실뿐이라고 했다. 놀란 우리 표정을 본 간호사는 익숙하다는 듯 가격 조정을 시작했고 아이는 조금 더 싸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의료비도 시장의 물건처럼 가격이 흥정된다는 사실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다. 의료비 체계가 생각보다 ‘유연’하다고 해야할까?

1인실이지만 막내가 어린 아이였으므로 같은 병실에 침대를 추가해서 남편과 막내가 함께 입원하는 조건으로 가격을 조율했고 결국 남편은 만 오천 밧, 막내는 만 밧 선에서 정리가 되었다.

그때는 입원비를 깎았다는 생각에 안도했지만, 잠시 후 계산해보니 하룻밤 입원비만으로 백만 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었다. 다행히 간호사들의 케어는 세심했고, 수액과 주사의 효과로 두 사람 모두 빠르게 회복했다. 그날 밤, 남편과 막내는 병실에서 마치 호텔에 온 사람들처럼 비교적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그 이후로 아이들은 무탈하게 자라주었다. 가벼운 감기나 열 정도는 한국에서 가져온 상비약이나 동네 약국, 편의점에서 파는 약으로 넘길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해외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가족 모두 큰 사고나 중병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가장 최근의 병원 방문은 나의 일이었다. 달리기에 재미를 붙이고 풀코스 마라톤을 목표로 장거리 훈련과 속도 훈련을 반복하던 시기에 발목 통증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통증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혹시 뼈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지, 무엇보다 대회를 계속 준비해도 되는지 알고 싶어 결국 병원을 찾았다.

10년 가까이 태국에 살았기에 이제는 병원에 혼자 갈 수는 있었지만, 전문 의료 용어가 오가는 상황에서 영어도 태국어도 충분하지 않아 한국어 통역 서비스를 신청했다.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은 뒤 의사는 인대염이라고 진단했고 바르는 약을 처방했다. 그러면서 내 발이 평발이니 달리기는 가볍게만 하라고, 계속 달리고 싶다면 맞춤 러닝화를 제작하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내 발이 평발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일단 진료를 마치고 삼천 밧(약 12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지불했다.

한 달쯤 뒤 한국에 갈 일이 생겼고, 여전히 불편한 발목이 마음에 걸려 한국의 정형외과를 찾았다. 진단은 같았다. 인대에 무리가 간 상태라는 것.

다만 의사는 스트레칭과 마사지에 신경 쓰면 충분히 달릴 수 있다고 했다.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제 발, 평발인가요?”


의사는 웃으며 단번에 아니라고 했다. 특수 러닝화까지 필요 없다고도 했다. 진료를 마치고 나와 계산서를 보니 병원비는 5,900원, 약값은 3,500원이었다.


그날 나는 속 시원했다. 병의 경중보다, 내 나라 내 말로 설명을 듣고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컸다. 아플 때만큼은 역시 익숙한 시스템과 언어가 주는 안정감이 크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래서 태국살이에서 병원은 아프기 때문에 가는 곳이 아니라 아플까 봐 더 두려운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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