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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Y Jun 27. 2024

화장실 벽의 모기

생명을 잡아먹는 생명을 잡아먹는 자

 

 “쾅”하는 거대한 소음이 온몸에 번졌다. 거대한 것이 몸을 훑고 난 뒤 세상은 새까맣게 가려졌다. 그때 서야 급히 익숙한 것들을 찾기 위해 손끝을 뻗어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입 주위를 살폈다. 바늘의 촉감을 기억하려는 감각들이 섬세해진다. 없는 오감들이 밝아진다. 매일 눈에 들어오던, 다리와 팔에 휘날리고 있던 털들은 한 가닥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 이제는 그냥 점이 되어버린 나에게 남은 시간이. 다시 누리끼리한 새벽은 어김없이 다가왔고, 결국 흩어진 육신의 잔해들을 보고야 말았다.


  축축한 습기가 감도는 이곳에서 나는, 생이 다하고 나서야 심장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 납작한 형태로 압축된 세상에 그냥 남겨져 있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만 찍히는 법은 없다. 지금 내 주변에 펼쳐진 상황만 봐도 그렇다. 찢겨 터져버린 살갗 사이로 얼기설기 엉겨 붙은 시뻘건 알갱이들이 이렇게 선명할 수 없다. 그 와중에도 빨간 것들을 향해 무작정 돌진하는 고질적인 습성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나는 나를 잡아먹을 수 있는 존재였다. 이건 완벽한 배신이다. 나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남의 피였다. 자신을 물어뜯고 먹는 무지한 존재는 이 세상에 동물밖에 없다고, 참 어리석다고 비웃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순간 나의 피가 수치스러웠다. 죽은 몸으로부터 한 번 더 벗어나고 싶어져 괴로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실은 심장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더욱 각인시켜 줄 뿐이었다. 벽 위로 스며든 초가을의 한기는 죽은 몸을 가리지 않고 압박해 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살가죽은 형태가 사라지고 검갈색 피 반죽은 더 단단하게 굳어져 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미칠 것 같은 뜨거움을 즐기는, 이 선천적이면서 기괴한 유전자의 섭리를 어떻게 거스를 수 있나 싶기도하다. 그러자 비웃음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그래, 인간도 자신을 개조하는 일 앞에서는 다 어려워한다. 심지어 내가 보는 세계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고차원적이고, 더 거대한데 이따금 자신을 죽이잖아. 그러니까 나야 오죽할까. 그리고 그들은 나 또한 죽였다. 내가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를 먹으려고 했듯이 인간도 자신을 죽여서 없애버릴 수 있다는 이 묘한 유사성이 나에게 위로가 될 줄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죽임을 당했다는 억울함이 말끔히 사라졌다. 자신을 잡아먹는 무지한 존재가 나 말고 또 있었구나. 시린 아픔도 소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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