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수 없는 나날에 대한 기록
엄마가 나를 낳고 틈틈이 한 페이지씩 써 내려갔던 일기장은, 지난 삼십 년 동안 집안 책장 속 이곳저곳 자리를 옮겨가며 꽂혀 있었다. 어릴 적부터 책을 고르기 위해 책장 앞에 서있거나, 별생각 없이 책들을 눈으로 훑으면 이따금씩 눈에 들어오곤 했던 일기장이었다. 그러면 나는 늘 지나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앉아 노트를 펼쳤었다. 붉은색 표지에 토마토 꼭지 머리를 한 캐릭터의 얼굴이 그려진 노트로, 진한 빨간색이었던 노트의 표지의 색은 세월을 따라 그 빛깔이 바래고, 속지도 연 누렇게 변색되었지만 꾹꾹 눌러쓴 엄마의 글씨만은 여전했다.
96년도, 내가 태어나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적은 것으로 보이는 - 날짜는 96년 5월 13일로 적혀있지만, 정말 그날 기록한 것인지는 엄마도 기억하지 못한다 - 당시 출산 기록부터 초등학교 4학년 무렵까지, 한 권의 노트에 차곡차곡 담겨있는 이야기를 읽어 내려갈 때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 같이 새롭고, 심지어 신비한 느낌까지 들어서, 읽을 때마다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쩌다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를 읽을 때면 나는, 일기를 엄마한테 보여주며 "내가 진짜 이랬어?"라고 놀라는 투로 물어보거나, "와, 이렇게 까지 혼낼 필요는 없었던 것 같은데~"라며, 당시 엄마의 행동을 장난스레 나무라곤 하는데, 지금도 간혹 그럴 때가 있다. 그러면 엄마는 언제나 나의 불같은 황소고집과 당신의 산후우울로 인한 서툰 육아를 이유로 답했다. 그런데 산후우울이 있었던 엄마가 쓴 기록이지만, 우울한 느낌이나 씁쓸하고 고독한 분위기는 읽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뭐였을까. 그동안 일기장을 읽으며 떠올랐던 모든 시간은 즐거움이었고, 회상의 맛은 일종의 '팝핀스타' 아이스크림처럼 머릿속에 웃음이 팡팡 시원하게 터졌다. 나는 그렇게 엄마의 일기장이 지닌 매력에 빠져들게 된 것 같다.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책은 없는 것처럼. 엄마의 일기장이 나에게 그런 책이었다. 김하나 작가님이 빅토리 노트의 서문에서 쓰셨듯 자라면서 당신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이 어머니께서 쓰셨던 육아일기였듯, 나 또한 그랬다. 울고, 웃고, 장난치고, 자칫 상처로 남을까 노심초사했던 그 모든 나날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참 희망적으로 느껴지는 담백한 희로애락 그 자체다.
엄마의 편지를 연재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다시 노트를 읽었던 지난 몇 주간 이 일기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기록임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그 까닭을 생각해 보니 생각해 보니 일기 분량의 삼분의 일이 내가 절대 기억할 수 없는 시절에 써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세 살 이전의 경험했던 일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는데, 이 기록에는 바로 그 시기의 나에 대한 내용이 삼분의 일을 차지한다.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점차 귀해지는 느낌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세상과 나와의 연결고리가 희미하던 시절, 절대 시간이 지나도 떠올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걱정하며 진솔한 사랑을 꾹꾹 눌러 담아 남겨준 글들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참 감사하고 따뜻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처음 기록할 때보다 훗날 더 그 의미가 가치 있어지는 것. 엄마의 일기를 읽으며 꿈꾼다. 그렇게 되길 조심스레 바라본다. 기록의 가치는, 때로 시간이 무르익어야 비로소 빛나는 법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