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엄마의 첫 번째 일기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조금의 공허함만 치밀어도 엄마한테 전화를 걸던 요즘이었다. 결국 본가에 내려가 보름을 넘게 머물렀다. 타지에서 37도까지 치닫는 살인적인 폭염을 홀로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던 이유도 있었다. 그저 더위를 피할 생각으로 계획도 없이 내려간 집에서, 나는 한 달 전부터 생각만 했던 엄마의 오래된 글을 연재로 풀어낼 생각을 실행에 옮길 생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사실 생각에 실행력이 붙기까지 이런저런 고민으로 계획이 뒤로 미뤄지기도 했다. 엄마의 사적인 글이기도 하고, 결혼 생활을 해보지 않은 내가 출산과 육아 등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의 내용을 다룬다는 것이, 예상치 못한 장벽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글을 딸인 나의 시선에서 풀어내는 방향이라면, 글과 나의 관계성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찾아야 하는 것도 중요한 숙제였다.
할까, 하지 말까. 고민이 한 달 동안 갈등했다. 하지만 심사숙고를 한 끝에 나는 엄마의 노트를 연재하기로 결정했다. 노트의 빛바랜 속지를 한 장씩 넘기던 어느 날, 뜻밖의 의미를 발견해서였다. 뭔가 속에서 몽글몽글 피어로는 기분이었는데, 나는 그 기분의 의미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간 은근히 경시하고 있던 나에 대한 소중함이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 단순히 좋은 말의 범주 안에서만 맴돌고 있던 그 말이 생각의 테두리를 뚫고 뛰쳐나오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래 저래 치여 살고 있던 현실의 바닥과 바닥 사이로, 사랑받고 살던 옛 시간들이 납작하게 억눌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1996. 5. 13. (월)
[새벽 2시]
엄마의 육아일기는 딸의 입장에서 '존재했지만 기억할 수 없는 날'에 관한 이야기라 말하고 싶다. 일기의 맨 첫 장 상단에 적힌 일자와 시간에 시선이 먼저 꽂힌다. 1996년 05월 13일. 그날은 내가 태어난 날이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다. 만약 엄마가 육아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로 노트에 기록마저 안 하셨다면, 그 짧지 않은 나의 소소하고 몽글몽글한 성장 에피소드를. 약 7년에 가까운 긴 시간을 영구적으로 박제하기란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노트를 보니 더욱 아찔해진다. 인생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시간이니 소중하다 못해 무척 귀하다는 말을 어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기억에는 없지만 엄마의 기억을 통해 나를 떠올리고, 살면서 경시하게 되는 존재의 소중함을 따뜻하게 일깨워 준다는 측면에서, 이 일기에 대한 설명은 단지 귀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엄마의 첫 번째 일기 전문]
1996. 05. 13. (월)
<새벽 2시>
출산일이 가까워지니 잠이 오지 않는다. 몸도 무겁고 숨쉬기도 힘들어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소변도 아닌 것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확인해 보니 양수라는 것이 터진 듯하였다. 아직 우리 아기가 태어나려면 1주일이나 더 남았는데 겁이 났다. 혹시나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하는 조바심과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친정엄마와 언니한테 새벽에 전화를 했더니, 다들 무슨 일이냐며 깜짝 놀라 전화를 받았다. 엄마와 언니가 한참 꿀잠을 자고 있는 시간인 줄 알면서도, 내가 너무 불안하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전화기 너머로 "양수가 터졌으니, 얼른 병원에 가라"로 했다. 이럴 때 멀리 있는 친정식구들이 어찌나 그립던지. 코 골며 맛있게 자고 있던 남편을 깨워서 병원으로 향했다.
<새벽 3시>
진료실에서 간단한 검사와 함께 생애 처음으로 항문에 약을 주입하고 장을 자극하여 배변을 유도하는 관장이라는 걸 했다. 참기 힘든 느낌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양수가 터짐으로 인해서 진통이 시작되지 않으면 6시에 촉진제를 맞고 분만을 하자고 했다. 아직 일주일이나 남은 분만일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분만을 하게 돼서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아기를 오늘 중으로 품에 안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무서움을 조금 누룰 수 있었다. 새벽 시간 진통실에는 나 혼자였다. 1시간이 지났는데도 진통의 기미가 없다.
<오전 8시>
진통이 없어서 결국 오전 6시에 유도분만제인, 촉진제를 맞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게 진통의 시작인가 보다고 생각하는 순간, 십 분에 한 번, 오분에 한 번 꼴로 점점 간격이 좁아지는 진통의 고통이 시작되고부터는 너무 아파서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아픈데도 진통과 진통 사이에 잠깐 통증이 가라앉은 찰나의 시간에 졸음은 왜 그리 오던지 알 수가 없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졸음이었다. 진통과 졸음이 왔다 갔다 오가면서도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를 낳은 엄마의 고통도 이렇게 심했으리라', '먼저 경험한 언니, 친구도 이렇게 고통 끝에 아기를 안았을 것이다'라고.
<오전 10시>
처음 겪는 산통이라 끝이 언제인지 모르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아기는 언제 나올는지. 고통에 몸부림치느라 앉았다, 누웠다, 바닥에 내려갔다. 혼자서 어쩔 줄 몰라할 때, 오늘 처음으로 실습 나온 대학생 둘이 옆에서 손을 잡아줬다. 학생들은 분만실에 처음 와봐서 그런지,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 보였다. 힘내시라면서 손을 잡아준다. 고맙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이 엄청난 고통을 나눌 수는 없으니.
<오전 11시>
찢어질 듯한 이 통증의 끝은 언제일까? 의사 선생님이 자궁문이 아직 덜 열려서 기다려야 된다고 하신다.
<오전 11시 45분>
살면서 이렇게 힘을 써본 적이 있었던가.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그 순간 아기가 울며 세상에 태어났다. 예쁜 우리 아가의 첫 울음소리. "딸이에요" 간호사의 한 마디. 아들이건 딸이건 상관없다. 내가 낳은 내 아이다. 아기 얼굴을 보여주는데 깜짝 놀랐다. 무슨 아기가 이렇게 예쁘게 생겼는지. 신생아는 원래 인물이 많이 없는데, 쌍꺼풀 있는 예쁜 눈. 하얀 피부. 주름기 없는 동그란 얼굴. 남편 닮은 예쁜 아기. 잘생긴 남편 닮아서 어찌나 다행인지 감사하다. 결국 내가 해냈다. 언제 아팠냐는 듯이 홀가분한 기분이다. 세상을 다 얻은듯한 기분이다. 고통 끝에 마주한 나의 작은 생명이 눈물 나게 고맙고 감사하고 너무 소중하다. 지옥과 천국을 왔다 갔다 했던 분만실 밖에서 기다리는 엄마와 남편에게 빨리 우리 아기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남편이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통의 터널의 끝에서 만난 나의 아기로 인해 나의 인생은 행복으로 가득 찰 것이다. 난 오늘 엄마로 다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