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엄마의 두 번째 일기
지난 7월에 엄마의 편지를 찰랑찰랑 넘기며 읽어가던 남동생이 말했다. "엄마한테 은근 소녀 감성이 있다니까" 무슨 비밀스러운 사실을 폭로라도 하듯 동생은 젊을 적 엄마를 그렇게 표현했다. 부산 아줌마의 전형적인 하이톤 목소리에, 시원시원한 행동과 말투. 아담하지만 알싸한 청양고추처럼 화끈하고 톡 쏘는 에너자이저. 가만히 앉아서 하는 단순노동을 좋아하는 나와는 완전히 정 반대의 성격이라 사춘기 시절 사소한 문제로도 치열하게 다투기를 밥 먹듯이 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뭘 하겠다고 하면 추진력이 좋고, 가정법과 상상의 힘을 믿지 않는 엄마에게 소녀감성이라니. 평생을 알고 있던 엄마의 모습은 동생의 말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으므로, 도대체 동생이 어느 문장에서 엄마에게 몽글몽글한 소녀의 감성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 것인지 처음에는 의아스러웠다.
너무 오래간만에 읽었던 탓이었을까. 엄마의 속을 헤아릴 만큼 성숙하지 못했던 탓이었을까. 아마 둘 다 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시간의 힘에 쓸려 변해버린 엄마에 대한 기억만 가득한 현재 때문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 편지는 내가 태어난 다음 날에 적힌 글로, 그 안에는 동생이 과거의 엄마를 '소녀 감성'이라는 부들부들한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한 이유를 짐작케 하는 문장이 있다.
'작고 연약한 우리 아기에게 이 세상은 찬 공기 속으로 던져진 듯 차갑게 느껴졌을 텐데. 난생처음 경험한 밝음과 시끄러운 소리, 그리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지 않았을까.'
지금이야 불안하든 잘 지내든 한결같이 '믿는다'는 말을 건네며 별 다른 걱정을 하지 않는 엄마지만, 내가 태어난 직후, 나를 보는 엄마의 시선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소리와 빛이 폭포처럼 무수히 쏟아지는 세상에서 낯선 자극에 놀라고 힘들어할 나를 걱정했던 엄마. 솔직히 너무 생경하고 낯설어서, 편지를 읽으면서 그랬고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엄마한테 다시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냐고. 아주 놀랍다고. 내 반응에 엄마는 모성애가 그득한 마음을 당신의 성격대로 논리를 갖추어 답을 했다.
'따뜻한 배속에 있다가 나와보니 공기가 차잖아. 어두운 곳에 있다가 나와보니 조명이 밝았을 것이고, 조용한 뱃속에 비해 나와보니 소리들이 시끄러웠을 테고.'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으나,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편지의 매력인 것 같다. 상대방이 겪을 힘듦과 고통을 지나치지 못하고 반응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의 강연과 여러 작가들의 문장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자식이 겪을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엄마의 마음 역시 사랑일 것이다. 엄마가 적은 문구에서 - 자식과 부모 간의 사랑과 집착은 분명 구분해야 하는 것이지만 - 드러나는 마음의 결은 충분히 사랑의 정의에 부합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집에서 첫 아이였고, 친가 쪽 손자 중에서 첫 여자 아이여서 그랬겠지. 태어나자마자 '장녀'와 '첫 여자 아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으니, 애지중지 여기는 부모님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막상 그 상황에서는 그게 사랑인지도 몰랐을 것이고, 이 생각조차 이미 다 큰 상태에서 글을 다시 읽고 난 직후에 든 생각이니, 이 편지에 대응하는 최초의 느낌은 아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사랑'이 무엇인지 깊은 고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돼서 그런 것일까. 엄마의 편지는 나도 모르게 해마다 조금씩 그 얼굴을 달리했던 것 같다. 익어가고 발효되는 과정처럼, 대상은 똑같으나 모양과 색깔과 향이 달라지는 것과 같이. 당신의 소녀 감성을 '사랑'의 철없는 묘사로 둔갑해 표현한 것은 아닌가 하는 뒤늦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엄마의 두 번째 일기 전문]
1996. 05. 14. (화)
밤새 잠을 설쳤다. 온몸이 땀범벅이라서 샤워하고 싶어도 병원이라 그것마저 자유롭지가 않다. 누워서 손을 배위로 올려보니 배가 쪼금 들어간 게 전부다. 아기를 낳으면 배가 홀쭉해질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밤새 아기가 잘 잤는지 너무 궁금하다. 작고 연약한 우리 아기에게 이 세상은 찬 공기 속으로 던져진 듯 차갑게 느껴졌을 텐데. 난생처음 경험한 밝음과 시끄러운 소리, 그리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면회 시간에만 볼 수 있으니, 여러모로 걱정을 하면서도 보고 싶은 마음을 누를 수밖에 없다.
남편은 벌써부터 카메라를 들고 와서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나의 걱정과는 반대로 남편은 정상적으로 태어난 아기가 너무 감사하고 감동적이고, 무한한 책임감이 든다고 했다. 남편의 말을 들으니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순산의 기쁨까지 더해서.
<면회 시간>
눈, 코, 입, 귀, 손가락, 발가락. 예쁘고 경이로워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잠만 자고 있는 아기였지만 나와 남편은 눈 깜빡일 시간도 아까웠다. 머리카락은 새까맣고 숱이 많기까지 하네. 무슨 아기가 이렇게 이쁠까. 내가 낳았지만 뿌듯하다. 그런데 2.65kg으로 태어나 너무 작다. 분명 이것저것 많이 먹었는데 아기한테 영양분이 다 가지 않은 것 같아, 아기 얼굴을 보는 내도록 '어쩌면 좋을까' 싶은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랄게. 나의 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