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자화자찬

스물여섯 엄마의 세 번째 일기

by 김아현

간혹 엄마는 나와 동생 앞에서 우스꽝스러우면서 재미있는 자화자찬을 하실 때가 있다. 뿌듯함이 묻어 나오는 들뜬 목소리로 자신에게 흠뻑 도취되어 주변의 반응이 어떠하든 자신을 향해 칭찬의 말을 던지시는데, 특징이 하나 있다면 엄마는 나와 동생을 매개로 삼아 자화자찬 하신다는 것이다.

나를 보면은 "내가 낳았지만 참 예쁘다!"라며 으쓱한 입꼬리로 미소를 지으시고, 부엌을 지나가는 남동생한테는 뒤통수에 대고 "내가 낳았지만 참 잘 생겼다"라며 뒷말에 힘을 실으신다. 어깨 위로 두 손을 올리시고는 팡팡 세게 두드리는 엄마의 손길에 동생은 "아~왜 그래!" 하며 낮은 목소리로 질색팔색하는데, 팔을 원으로 휘저으며 이리저리 피하는 동생의 엉거주춤한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비식 절로 새어 나온다.

보통의 자화자찬은 칭찬의 대상이 주로 자신에게 국한되어 있지만, 엄마의 자화자찬에는 나와 동생과 그녀 자신, 어떤 때는 아빠도 매개체가 된다. 그래서 그녀의 자화자찬은 우월과 거리가 멀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일종의 웃긴 칭찬이다.


그 당당한 자화자찬의 근거지는 과연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예전에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었다. 엄마는 어디서든, 누구 앞에서든 기죽거나 꿇리는 법이 결단코 없었던 사람이며 -지금도 매한가지-, 여러 사람을 만나고 밤늦게 돌아와도 지치지 않아 요즘도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하는 사람이다. 괄괄한 중년의 에너자이저 아줌마가인 엄마라서, 그녀의 칭찬마저 마르지 않는 자신감으로부터 비롯된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나는 대체로 엄마의 밝은 웃음만 기억하지, 약해지는 순간에 눈물부터 차오르는 그녀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생각해 보면 과거에도 지금과 다를 바 없이 활달했던 엄마였지만, 그녀가 스스로를 칭찬하는 모습을 본 경험은 나에겐 없다. 노트를 정리하며 생각의 촉수가 새롭게 뻗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때였다. 2.65kg의 작은 나를 낳으시고 난 뒤에 걱정하며 잠 못 이루는 엄마가 있었고, 그 이후에는 남편과의 크고 작은 성격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부딪히고 마찰하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나를 낳고 남편이라는 완강하고 이해되지 않는 세계를 정면으로 마주한 뒤에야, 비로소 현실적인 세상의 무게 아래에서 냉정하게 자기 성찰을 거듭하셨다. 그 시절에 내 손을 잡고 사찰을 자주 방문하셨었고, 불교에 점차 깊이 귀의하기 시작하신 것도 그때였다.

엄마는 이미 다 지나간 버린 시절의 옛 흐름을 두고는, 자신도 철없었던 시절이었다고 말씀하시곤 한다. 세상 못마땅해 보이는 것이 많고, 힘들 때 이런저런 생각으로 매몰의 유혹에 충분히 빠질 법한 나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엄마 나이보다 나이를 더 먹은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언제나 힘 있는 사람, 어려움 따위는 물 한잔 마시는 것처럼 술술 넘기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옆에서 보면 좀 힘든 상황에서도 있는 투정, 없는 투정을 다 부리고, 앞담을 야무지게 퍼붇고는 그렇게 없었던 일처럼 잊어버리신다. 그것이 엄마가 긴 시간 동안 터득한 장애물 극복법이었을까.

엄마를 비롯한 나와 동생, 그리고 아빠까지. 예전에는 다 어리고 머리가 새까맣게 젊었으므로 세상과 자신 사이의 벌어져 있는 간격 앞에서 불같은 화로 머리카락이 타들어가기도 하고, 기대가 무너지는 무력감이 겹겹이 쌓였을 것이다. 웬만큼 극복을 하고 별 탈이 없이 사는 지금, 이 지금이 고맙게 느껴지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자화자찬 때문인 것 같다. 엄마가 다 키운 자식들과 나이 들어 그제야 유순해진 남편을 자랑삼아 자신에게 칭찬해 온 것은, 서툴렀던 가족 간의 시간을 어떻게든 좋은 관계로 유지하고자 노력해 온 그간의 시간이 녹아있는 건지 모르겠다. 잘 자란 우리가 보기 좋아서, 가족으로 여전히 살고 있음에 그 고마움에 보답하듯 호탕한 자기 자랑을 던지신 것일 거다.


PS. 아마 최근일 텐데, 어느 날 엄마는 잘 생겨 보이는(?) 아들 앞에서, "아, 내 자궁 칭찬해"라고 하시며 이제는 자신의 자궁마저 칭찬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기적을 보여주셨다. 황당하고 너무 웃겨 소파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폭소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내 웃음에 엄마도 옮아서 함께 웃었다. 자기 방에 들어간 남동생도 엄마의 우스꽝스러운 자화자찬이 맴돌았는지 혼자 허허거리며 한 동안 웃었다.


[엄마의 세 번째 일기 전문]


1996.05.15(수)


퇴원하는 날이다.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에 들떠 있었다. 드디어 아기를 내 품에 안을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신생아실로 갔는데, 아기가 힘이 너무 없어서 인큐베이터에 좀 더 있어야 될 것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하, 어제까지 아무렇지도 않고 멀쩡하던 딸아이였는데, 집에 데려갈 수 없을 만큼 힘이 없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고, 앞이 아득하니 보이지 않았다. 2.65kg으로 작게 태어나서 그런 것 같았다. 아기만 병원에 놔두고 어떻게 나만 퇴원할 수 있나.


저녁에 면회시간에 아기를 보러 갔다. 힘이 없어서 우유를 잘 못 빨아먹는다고 한다. 수유실에 아기를 데리고 나와서 우유를 먹여보니 정말 잘 못 먹는 거 같아서 얼마나 안쓰러운지 모르겠다. 남편은 아기한테 우유 한 모금이라도 더 먹이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애를 썼다. 조금이라도 먹여야 빨리 퇴원을 할 수 있을 텐데, 마음이 찢어진다. 집에 와서도 잠이 오지 않는다. 온통 아기 생각뿐이다. 큰 병이 있는 게 아니니, 금방 회복되어 데리고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아기가 이 힘듦을 잘 견뎌내서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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