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엄마의 네 번째 일기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 예의 바른 사람,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자신감 있는 사람, 사랑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 등, 종 잡을 수 없이 형태가 다양한 관계처럼 '좋은 사람'을 수식하는 표현 또한 도처에 널려 있다. 개인의 희망사항과 실제 경험이 뒤섞여 만들어진 이상적인 인간상일 수 있겠으나, 여러 문장으로 표현되곤 하는 인간상 속에서 사랑의 본질은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사람 좋고, 저런 사람 좋다는 이유로 문어발식 연애를 하다가 상대를 모두 잃게 되는 것처럼, 사랑은 이 문장, 저 문장이 중구난방으로 덧입혀질수록 그 실체가 되려 모호해진다. 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넓은 사랑의 스펙트럼 속에서 변치 않는 가치는 무엇일까. 그 가치는 무엇으로 불릴까. 가치를 실천할 줄 아는 사람에게 붙는 수식어는 과연 무엇일까. 그 수많은 수식어와 관계된 사랑을 관통하는 핵심이 뭔지 오래간 생각했었다.
한때 나는 인간관계를 오래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답을 찾고자 했었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 곁에 머물 줄 아는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나 하는 의문에서 비롯되었던 것인데, 만약 내가 한 사람에게 마음을 다 주지 않고 문어발식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저런 머리 아픈 의문 따위는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릴 적에는 한 사람만 잘해도 상대가 그 마음을 읽어주어 좋은 관계가 유지될 것이라고 믿곤 했었다. 그러나 다 큰 머리로 생각하니 그건 어불성설이었다. '상대가 나의 선한 마음을 이용한다면'. '좋아하는 나의 마음이 이용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당하고 있다면'과 같은 가정을 할 줄 몰랐으므로, 사랑에 있어 어느 정도 헌신은 필요하나 그것도 정도껏일 때 좋은 것임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가스라이팅이니 데이트 폭력이니, 보험 사기이니 하는 범죄들은 다 가까운 관계에서 벌어지는 공통점이 있다. 그걸 생각하면 사랑이라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고, 어려워야 사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은 참으로 어렵고, 버겁다. 사랑의 무게는 서로 좋기만 할 때는 거의 느껴지지 않다가 사랑을 이뤘다고 생각한 이후에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난다. 사랑은 무겁다. 자신의 마음을 다 내어주는 것이 쉽게 느껴질 정도로 가볍지 않다. 헤어졌던 대부분의 사람들을 보면, 무게를 감당하다 버거워서 찢어진 경우가 대다수로, 내가 힘들어서, 혹은 상대가 힘들어서, 아니면 둘 다 괴로워서 벌려진 가랑이 사이로 괴로움과 고통, 아픔이라는 것을 흘려보내다.
약한 몸으로 태어나 황달 치료를 받고 있는 나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던 엄마와 아끼는 딸 앞에서 그 괴로움을 쉽게 저버리지 않고 부딪혔던 날들. 그걸 생각하면 사랑은 아픈 사람보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더 걱정하고 슬퍼하는 것이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누군가의 한 마디에 체념과 포기, 그리고 희망의 칼날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린다. 신세한탄을 하면서 울고, 느낄 수 없는 아픔을 마치 물건처럼 들고 올 수 있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멀쩡한 몸을 상대의 아픔과 맞바꾸길 원하면서 까지 대신 아프길 바란다. 상대의 아픔으로부터 전해오는 괴로운 공명을 감당하는데 한치 물러섬과 머뭇거림이 없는 것. 비로소 그것이 사랑의 영원한 본질임을, 성장할 대로 성장한 머리로 이제야 그 윤곽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사랑 앞에서는 같이 아플 각오가 필요하다.
[스물여섯 엄마의 네 번째 일기 전문]
1996. 05.16. (목)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병원에 달려갔다. 오늘부터 황달이 심해서 황달치료를 한다고 검은 테이프로 눈을 가리고 치료 중이었다. 신생아 정상 황달수치가 5mg/dl이라고 하는데, 우리 아기는 11mg/dl이라고 한다. 생후 2~3일째 나타나서 5~7일 사이에 사라진다고는 하지만 치료 중인 모습을 보니 또 눈물이 난다. 말똥말똥 반짝반짝 예쁜 눈을 볼 수 없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유달리 신생아인데도 눈이 크고 예쁜 내 아가야. 저녁 면회시간에 아빠랑 할머니랑 또 면회를 갔더니 30ml를 1시간 만에 겨우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글쎄, 오늘은 60ml를 거뜬히 먹는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일쯤 상태를 봐서 퇴원할 수도 있다는 좋은 소식까지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발걸음이 깃털 같았다. 밤 사이에 치료를 잘 받아서 내일 꼭 퇴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가야, 힘내자. 엄마도 기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