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엄마의 다섯 번째 일기
바라만 봐도 예쁘다, 귀엽다는 말을 들을 시절에는 정작 그 고마움을 알지 못한다. 하나 더 안타까운 사실은, 본인이 예쁘고 귀여운 존재란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사랑받는 그 순간에 좋은 게 좋은 것임을 제때 알았으면, 우리 모두가 겪었던 좋은 시절이 아주 잠깐이라 할지라도 지워지지 않는 선명함으로 간직될 길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경험으로 가득하길 바라는 해들이 쌓일수록 우리는 기어이 깨진 장독 밑으로 새는 물처럼, 그 양이 어느 정도이든 관계없이 좋았던 기억을 흘려보내고야 만다. 사랑과 보호를 먹고 자랐다던 그 소중한 나날들은 왜 웬만큼 머리가 자라기까지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소멸해 버리는 것일까. 다 커서는 살아내야 한다는 이유로, 어려서는 어리다는 이유로 그게 사랑인지 모른 채 지나쳐 버린 치명적인 어리석음을 생각하면, 어떤 형태로든 너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남기는 일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엄마는 다 큰 자식들에게 지나가듯 하는 말로 "너 옛날에 엄청 귀여웠어. 발이 어찌나 오동통했던지, 깨물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니까?", "아빠랑 놀던 친한 아저씨들이 무등 태워주고, 인형 사주고, 놀아주고 했는데 기억나?", "너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밥 먹듯이 오갔던 길이야", "아빠가 땀 뻘뻘 흘려가며 어떻게든 젖병 물리려고 애쓰셨었지"와 같이 아껴주고 함께했던 날을 옆에서 조곤조곤 말씀해 주시곤 한다. 그 말이 어떤 때는 저공비행하는 날갯짓처럼 가볍지만 땅바닥에 붙을 듯 무거워서 콕 박힌다. 기억에 없는 일이 누군가의 말 하나로 의미가 되고, 그 의미에 기대어 삶이 그래도 아주 흑빛은 아님을 알게 된다.
[스물여섯 엄마의 다섯 번째 편지 전문]
1996. 05. 17. (금)
예쁜 아가야! 네가 드디어 집으로 오는 날이야. 집에 와보니 어떠니? 외할머니, 아빠, 엄마 목소리 들을 수 있어서 좋지? 이제부터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너의 탄생을 축하해 주는 모든 사람들 곁에서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주기만 하면 된단다.
우리 예쁜 아기아 집에 오니 집안 분위기도 달라졌어. 아빠, 엄마 둘만 살던 집에 예쁜 공주가 와주어서 이제 진짜 가족이 형성된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고, 뭔가 엄마로서 책임감도 막 생기고 그래. 서툴지만 강한 모성애로 우리 딸 잘 키워줄게.
너를 보는 외할머니, 아빠, 엄마의 얼굴에 하루 종일 함박웃음이 가득 머물고 있단다. 세상 무엇이 이렇게 하루 종일 기분 좋은 함박웃음을 짓게 할까 싶어. 너의 존재 자체가 기쁨이란다. 엄마한테 태어나 줘서 고마워.
그동안 병원에 있느라고 모유수유를 제대로 못해줘서 애가 탔는데, 집에 오니 그 중요한 모유를 먹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 어떻게든 먹이고 싶었는데 병원에 있는 동안 젖병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잘 못 먹는구나. 모유를 유축기로 짜서 젖병에 담아 먹이니까 그나마 잘 먹네.
1996. 07. 04. (금)
장마가 한창 기승을 부려서 그런지 무덥기도 하고 비가 억수같이 내리기도 하는 날이다.
장마가 지나가고 빨래가 잘 마르는 해가 쨍쨍한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아현이가 깨어있는 시간에는 눈 맞추고 계속 말을 시켜준다.
말똥말똥한 눈을 맞추고 있으면 세상이 다 맑아지는 기분이다.
엄마의 목소리에 방긋방긋 잘 웃기도 하고 잠시 자리를 뜨기라도 하면 눈물 흘리며 울기도 한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이렇게 신기하고 감동스러울까.
머리숱이 새까맣고 많아서 머리핀을 꽂아 줬더니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 이것도 혼자보기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