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엄마의 여섯 번째 일기
내용 상에 비치는 훈훈하고 따뜻한 모녀의 관계와는 달리 나는 크면서 엄마와 정말 많이 부딪혔다. 취향과 성격이 극단에 가까울 정도로 달라서 일상에서 쉽게 갈등했고, 특히 사춘기 때는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한 기분 때문에 사소한 문제로 언성을 높이며 거의 매일 갈등의 정점을 찍는 나날을 지나야 했었다. 이 까마득하게 다가오는 마음의 간격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 대화가 통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 돼서 운 적도 더러 울기도 했다. 그렇다고 당장 갈등 해결의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기에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엄마의 억센 성격이 좀 누그러지겠지 기대 아닌 기대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웬걸, 갱년기를 지나며 좀 수그러질 줄 알았던 엄마의 성격은 더욱 외향적인 성향이 짙어지는 쪽으로 변하고 말았고, 갈등의 주요 원인인 성격 차이는 지금도 크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결국 강산이 한 번 변할 동안에 사람은 바꿔 쓰는 것이 아니란 말처럼 나는 엄마가 되지도, 엄마는 내가 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모녀간의 숱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엄마의 육아일기를 토대로 글을 쓸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래, 엄마도 어렸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겠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육아일기를 대하는 포용적인 태도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언젠가 생각해 보았는데 답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만약 갈등과 싸움으로 커지는 것에 두려움이 있어서 진솔한 대화를 무작정 피하려고만 했다면 여전히 앙금이 줄어들지 않은 채로 곪아서 터질 대로 터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건 서로에게 결코 좋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모르니까. 그러므로 당시에 투닥거리며 아슬아슬한 외줄을 걸어가는 느낌이었지만 안 맞으면 안 맞는 데로 가야 하는 것이 최선이었고, 기분이 상한 상태라 하더라도 좋은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려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 역설 같아도 유일한 길이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어도 형태가 다른 돌이 부딪히며 닳아가는 것처럼, 달라도 너무 다른 성격을 맞추는 길은 싸우는 채로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며 나아가는 것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엄마는 엄마대로 어렸고, 나는 나대로 어렸던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작렬했던 스파크. 그러나 영원한 건 없다는 말이 맞는 것이, 언젠가 이십 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치열했던 둘 간의 갈등의 빈도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아예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같은 결말은 아니지만 확실한 건 부딪혀도 예전만큼 깊은 감점의 골까지 내려가지 않는다. 엄마가 되어야만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이 같은 말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엄마의 입장이 아주 완벽하게 와닿는 것은 아니어도 특별히 갈등의 골이 깊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 갈등 속에서 엄청나게 주고받았던 감정적 교류에 있었는데, 생각해 보면 싸워도 싸움 그 자체가 소통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소통은 현실이라 가족이라서, 친구라서 자연스러운 유대감이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싸우고 오해하고 화해하는 갈등의 전 과정은, 나한테도 엄마에게도 함께 안정적인 관계를 위해 한동안 주춧돌부터 차근차근 놓아야 했던 시간과 같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지반이 탄탄해지기까지의 시간을 지났으므로 흔들리는 듯해도 금방 회복할 수 있는 탄력 있는 관계가 된 것은 아닐까. 갈등과 소통을 구분하려 하지 않았던 노력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 이긴 하나, 엄마를 대할 때 여전히 이해되지 않고 울컥하는 상황에도 어떻게든 화해로 쉽게 유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만큼 내가 과거의 엄마 나이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덕도 어느 정도 작용을 했겠지만 말이다.
[스물여섯 엄마의 여섯 번째 일기 전문]
1996. 05. 20.
오늘은 우리 아기가 세상빛을 봐야 되는 날인데, 일주일 빨리 엄마 아빠를 만나러 나와버린 성질 급한 우리 아기. 태어날 때는 2.65kg이었는데 오늘 보니 3.5kg은 된 거 같아. 너무 커서 나오면 엄마 고생할까 봐 일찍 나온 거지? 엄마는 눈떠 있는 우리 아기 많이 보고 싶은데 신생아 수면시간이 16시간~20시간가량 된다고 하더니 정말 잘 자는 우리 아기. 밤낮도 바뀌지 않고 배고프면 일어나서 수유하고 또 자고, 벌써부터 효도하는 거지? 덕분에 엄마는 몸조리를 잘하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