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엄마의 일곱 번째 일기
부모의 기분에 따라 이름을 막 짓던 옛날의 사례를 제외하곤 이 세상 대부분의 이름은 좋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고 "너는 이제부터 옥주야, 옥주로 살아라"라고 했으면, 나는 지금껏 옥주로 살아왔을까. 올드한 이름이라고 한 마디 거들지 않으시고, 부모님께서 좋다고 하셨다면, 여태껏 옥주로 살았을까. 그렇게 옥주로 살다가 나의 의지든, 엄마의 권유로든 개명을 했을까. 아니면 올드한 이름과 자아의 경계가 흐릿해져 버린 탓에 그냥 살기를 택했을까. 결론이야 옥주로 살지 않았으므로 알 수 없는 일이지만 , 가끔 상상하면 피식하게 되는, 참 재미있는 에피소드다.
친할아버지는 손녀 이름을 지을 권한을 가진 첫 번째 주자로서 이름 짓기에 공을 들이셨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할아버지는 당신이 살았던 시대와 손녀가 살아갈 시대의 경계를 넘지 못하셨고, 그 공들여지었다던 이름을 손녀는 갖지 못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꿋꿋하게 한동안 혼자서 나를 옥주라고 부르셨고, 다른 가족들은 나를 지금의 이름으로 부르셨다. 당시 상황은 지금 들어도 여전히 안타깝고 웃기다. 할아버지께서 지으셨다는 이름은 지금 들어도 좋은 의미가 내포된 이름이다. 구슬 옥(玉)과 구슬 주(珠)를 사용하였는데, 아마 빛나고 맑은 구슬의 모습처럼 살으라는 뜻으로 지으신 건 아닐까 생각한다.
구슬의 맑은 이미지를 떠올리면, 어느 광고에서 나오는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문구가 생각난다. 그리고 드는 또 하나의 생각은 이름을 가질 수는 있지만 이름대로 사는 건 힘들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옥주로 살고 있지 않지만, 순간 광고 문구처럼 살기를 숨어서 기도하던 어느 날의 바람을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옥주는 아니지만, 옥주로 살기를 바란 것이다. 여전히 가까운 이가 나를 "옥주야!!!"라고 부르는 것을 상상하면 몸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지만, 더럽고 치사한 세상 속에 연꽃처럼 맑음을 유지하고 자신감을 가지는 일은 훌륭한 역량이란 걸 나는 안다. 나설 때 나설 수 있고, 나를 보호해야 할 순간에는 보호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어려움을 잘 넘고, 사회생활에 강한 자다. 그 순간, '옥주'에 대한 나의 오그라듦은 서서히 사라지고 좋은 이름대로 살길 바란 누군가의 좋은 마음만 남았다.
[스물여섯 엄마의 일곱 번째 일기 전문]
1996. 05. 18. (토)
친할아버지께서 우리 아기 이름을 직접 지어주신다고 하셨어. 얼굴만큼 예쁜 이름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지? 오늘은 처음으로 엄마가 혼자서 널 목욕시켜 봤어. 혹시라도 잘못될까 정말 조심스럽게 목욕을 시켰단다. 울지도 않고 순둥순둥 목욕을 잘하는 네가 어찌나 신기하고 귀엽던지. 너를 낳은 엄마는 지금 너무 행복하단다.
1996. 05. 21. (화)
어제 군산 친할아버지께서 우리 아기 이름을 지어서 보내주셨어. ‘옥주’......‘김옥주’. 그 이쁜 이름을 다 놔두고 엄마세대의 이름을 지어주셨네!! 아빠랑 엄마는 그 이름이 우리 아기랑 너무 안 어울려서 직접 짓기로 하고 어제부터 머리 맞대고 한자사전 찾아가면서 정말 신중하게 지었단다. 우리 아기랑 딱 어울릴 거 같은 예쁜 이름. 아현... 아현이... 김아현. 친할아버지가 아시면 좀 서운해할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너에게 ‘옥주’라는 이름을 주고 싶지가 않단다. 엄마 친구 중에도 옥주가 있거든. 조만간 아빠가 동사무소에 가서 출생신고를 할 예정이야. 오늘도 무한한 행복을 준 내 딸 아현이 건강하게 자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