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엄마의 여덟 번째 일기
가장 단순해 보이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말이 있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놀아주고, 달래는 일련의 보살핌이 그러하다. 무려 전쟁으로 비유되곤 하는 육아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순간 그 치열한 무게는 줄어든다. 탱탱했던 튜브에 서서히 바람이 빠져나가듯, 그 다이내믹한 인고의 시간은 현실감을 잃고 희미해지고 만다. 그래서일까. 현실의 육아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길은 결국 직접 아이를 낳아 기르는 방법 밖에 없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비슷한 모양의 사람들은 쉽게 연대하고, 쉽게 진동하고, 이해로 나아가는 길이 그리 거칠지는 않으니까. 경험이 없으면 무리 사이에서 별 할 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러므로 무리에 속할 증표의 역할을 해줄 작은 경험 정도는 갖춰야 서로 이상적인 공감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건, 그렇게 경험만이 진리라고 단정 짓는 편에 손을 들어버리면, 앞서 내가 엄마의 육아일기를 붙잡고 쓴 글이 허공에 지껄이는 말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이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자식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산의 경험이 없는 딸이, 그 옛날 육아하던 엄마의 시간으로 경계를 넘어가는 신기한 일은 왜 불가능하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이 글을 일종의 대화로 여겼던 것 같다. 미흡하지만 한 편씩 나아가며 경험한 자는 경험한 대로, 경험이 없으면 없는 대로 '그랬구나' 인정해 주고 '힘들었겠구나' 이해하려는 태도를 중요시 여기는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육아와 출산의 고된 경험이 전무해도, 누군가의 고된 시간 위에서 자랐음을 알기에 육아일기를 소재 삼아 쓸 생각을 할 수 있었으리라. 세계를 말하는 방식과 소통의 길이 천차만별이라면, 경험에 대한 설명이 반드시 경험한 자로부터 비롯될 필요는 없다. 소통의 한계를 넘으려면 경험만으로 부족하며, 반대편 세계에서 날아오는 관심과 귀 기울이려는 마음이 함께해야 한다. 마음이든, 사람이든 경계에서 경계로 넘어가는 일은 만만치 않다. 만만치 않기 때문에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따라가 보는 일을 귀하게 만든다.
자라온 시간을 자를 수 있는 한 가장 얇게 토막 낸 시간 한 조각을 보면 정말 지극히 일상적일 것이나, 엄마의 하루는 지치고, 지난하고, 정신없는 나날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에는 예뻐서, 또 어느 날에는 예쁘다고 내뱉는 말로 되려 힘을 얻으려고 했을 것이다. 사소한 배냇 웃음에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은 무엇일까. 탯줄이 떨어지고,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의 기쁨과 희열은 무엇일까. 그 기분에 대해 상상해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듯 도착한 곳은, 적어도 엄마는 작고 미약한 것이라 할지라도 신기해하고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란 사실이다. 자잘한 몽돌 같은 소소한 즐거움을 줍는 존재고, 별 볼 일 없는 평범함을 무기로 삼고 길고 지난한 시간을 너끈히 건너는 사람이라고, 나는 이 글을 읽으며 떠올렸다. 경험 없이도 이해가 통하는 문이 새로웠다.
[스물여섯 엄마의 여덟 번째 일기 전문]
1996. 05. 22. (수)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분유를 떼고 모유 수유만 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젖병으로 분유와 짜놓은 모유를 번갈아 먹이긴 했는데, 모유가 남아 돌아서 버리는 게 더 많았다. 젖병에 익숙해져서 모유 수유에 적응을 못하고 헤매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애가 탄다. 배가 고팠는지 울면서 어설프게나마 열심히 빨아먹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곧 적응이 될 것 같다. 요즘은 배냇 웃음을 지을 때가 많다. 이유 없이 웃는 미소인 줄 알면서도 배냇웃음을 놓칠세라 찰나의 순간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쪼그마한 아현이가 자라서 눈 마주치고 웃는 날을 상상하며 오늘도 혼자서 행복해한다.
1996. 05. 23. (목)
탯줄배꼽 떨어진 날!! 그동안 조심조심 소독도 열심히 해주고 소중하게 다루었던 탯줄배꼽이 드디어 떨어졌단다. 탯줄 배꼽이 잘 마르고 자연스럽게 떨어졌다는 건 우리 아현이 몸이 건강하게 잘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하니 안심이 되고 기쁘기도 하네. 외할머니께서 배꼽을 완전히 건조해서 주머니에 담아 깨끗하게 보관하라고 하시는구나. 떨어진 탯줄배꼽 너무 신기해! 잘 보관해 뒀다가 우리 아현이가 성장하면 볼 수 있도록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