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와 취업준비 빼고 전부

나는 무엇으로 무력을 넘었을까

by 김아현

유월 중순쯤에 나는 대학원과의 인연을 조용히 정리했다. 부모님 이외에 다른 지인들에게 알리거나, SNS에 게시물을 올리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게 뭔 자랑인가 싶은 생각에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말해놓고 브런치에다 글을 쓰고 있다-

사십 페이지 가량 적었던 논문은 문장도 끝맺지 않은 채 그대로 덮어버렸다. 그리고 이후 세 달여의 시간 동안 한 번도 파일을 열어보지 않았다. 그 대신 다른 자격증 공부에 주의를 옮기는 것으로 그간의 대학원 생활을 마무리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다음 학기 연구등록은 하지 않았다. 이러다 분명 제적당할 것이 뻔하기에 이따금씩 아쉬운 마음이 울컥 솟았다. 그렇다고 다시 할 생각은? 없다. 확실하다. 대학원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고 나서야 속 시원하게 후회했지만 그 덕에 마쳐야 한다는 강박에 가려져 있던 진짜 내 마음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해가 다르게 추락하는 학위의 위상을 보고도 과거의 영광에 비춰 그것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합리화하기 싫었고. 각자의 자리를 찾기 위해 일찍이 고향이나 타지로 떠난 선후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무엇보다 견딜 수 없었고. 나아가는 사람들 속에 나이만 바뀐 채로 정체된 것 같은 느낌에서 마음 편히 자유롭고 싶었다.

해방을 원했지만 놓아버리면 그간 해온 것이 있으니 아깝다는 핑계로 놓지 못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해방이란 것은 못 놓을 것 같았던 줄을 놓자마자 그냥 주어지는 것이었다. 후회와 한데 섞여 찾아온 해방이란 것이 문제긴 했지만 말이다. 좀 더 일찍 그만뒀어야 할 일을 너무 참으면서 걸어온 것 같은 생각에 두 달 가까이 저녁만 되면 자책을 했었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나는 시간문제겠지만 수료까지 한답시고 등록금으로 지불한 1500만 원에 가까운 돈은 주식에 투자해서 몽땅 잃은 것과 같은 것으로 여기며 지난 세 달 동안 속을 다스렸다. '이것도 그저 하나의 실패의 관문에 불과한 거겠지, 요새는 실패도 하나의 콘텐츠처럼 공유하는 시대니까'라는 식으로 위로를 하면 또 가라앉은 텐션이 올라오곤 했다.

멈춰야 보이는 것들이 있는 말처럼, 이 길이 내 길이 아니었구나를 알게 된 건 그만두고 나서였다. 학위를 취득한다 한들 남는 게 없다는 걸 영혼은 이미 알고 있었을 터. 마음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아무리 냉철하고 지혜롭게 들리는 조언이라 할지라도 그 의미도 상황에 따라 득이 되기도 하고, 실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라는 말은 당시의 나에겐 적합하지 않은 말이었음을 근래에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이마저도 어쩌면 나를 어떻게든 몰아서 갈 때까지 가보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일 것이다.


길이 아닌 길을 고집하며 걸어오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무기력과 방황, 우울감의 늪에 빠지기도 했다. 그 당시에 피폐해진 정신력으로 좋은 곳에 취업하겠다고 되려 조급했으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성급한 취업준비는 독이 되었을 것이다. 마음에 없는 공무원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정말 어떻게 지나왔나 싶다. 6년의 시간 동안 단 하루도 흔들리지 않은 적 없었던 내가 더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고, 더 아프지 않고 여기까지 온 이유. 공부 빼고 전부. 취업준비 빼고 전부라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돌이켜보니 당시의 나에게 일상에서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불어넣어 준 것이 공부 빼고 전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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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내적 갈등과 불안감에 시달리던 날에 의지한 것들이다. 중고카메라를 들고 카페를 찾아다니며 블로그를 하는 것부터 시작해 틈만 나면 서울에 올라가 뮤지컬을 봤고 여유가 허락되면 전시회를 찾았다. 보지 않던 영화도 일부러 찾아보고 살면서 거들떠보지도 않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밋밋한 일상에 새로운 것을 의도적으로 넣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예전의 괴로움으로부터 한 발짝씩 멀어졌던 것 같다. 나는 그것들에 대해 이제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그것은 좁게는 관심이나 취미였고, 조금 넓게는 회복의 의미였다. 쌓는다는 느낌보다 내면을 채우는 시간이었고, 압축해서 말하면 인생 사는 느낌을 충전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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