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사경 노트 한 권을 채우고 난 후
불완전의 완전이라는 문구를 좋아한다.
모순된 단어 두 개가 서로 부딪히는 모습이 마치 중심축을 잃고 사방팔방으로 튀는 마음과 닮은 듯하고, 상충하는 단어를 번갈아 곱씹다 보면 왠지 어딘가로 나아가는 듯해서다. 저마다의 흠결이 쌓여 완전함에 다다르게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은 특별한 도닥임으로도 다가온다.
인간의 모순에는 쉽게 언짢아하면서 이런 문구에 마음이 간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진짜 모순일지 모르겠으나, 최근에 이 문구를 자주 떠올리게 된 계기가 있다면 사경을 해온 지난 시간 때문이다.
참고로 사경은 온전히 내 의지로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심적으로 불안정했던 시기였으므로 이미 있는 글을 따라 쓰겠다는 사소한 동력을 가지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하필 사경은 꾸준히 해야 의미가 있다는 말까지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매일 쓰겠다는 약속은 어불성설처럼 느껴졌는데, 그럼에도 지금껏 두 권의 노트를 사경으로 채우고, 칠 년이 지나서도 사경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시발점에는 엄마의 특별한 딜(?) 덕이었다.
반야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사경 서른 번 할 때마다 십만 원 줄게
사경 횟수와 십만 원을 교환하는 일. 엄마 돈을 뺐는 것 같기도 하고, 사경 자체가 내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 싶은 본질적인 의문도 들었다. 나는 내키지 않아 처음에는 안 하겠다고 했다. 그걸 뭐 하려 하냐고 짜증스럽게 틱틱거렸는데, 인내 있게 엄마는 나를 사경의 길로 꼬셨다.
대학원에서 공부한다고 알바도 안 하고 있는 딸을 두고 다른 엄마들처럼 한심함은커녕 경전을 쓰라고 하다니. 생각하면 엄마도 참 독특한 사람이지 싶다.
하루에 한 번씩. 노트의 반 페이지 정도를 할애하여 한 달을 꼬박 써야 벌 수 있는 십만 원. 그렇다 할 수입이 없었던 상황이라 돈 버는 심정으로 그냥 적어보자 싶어 결국 그 은근한 꼬심에 넘어간 유월 어느 저녁. 나는 단칸방 같은 원룸 책장에 수집품처럼 갖고 있던 보랏빛 공책을 꺼내 스탠드를 킨 책상 위로 펼쳤다. 그것이 사경의 첫 순간이었다.
같은 내용을 매일 쓰는 그 단순한 일도 예사 일이 아니겠다 싶었다. 그런데 돈 때문인지 의외로 예상 밖의 재미를 느끼며 초반에는 거의 매일 쓰다시피 했으나, 한 이 년 정도 지났을 무렵 아니나 다를까 조금씩 부침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경 노트를 보면 계속 쓰다가 어느 순간 끊겼던 시점이 군데군데 있다. 짧게는 며칠 혹은 몇 달, 길게는 2년이 넘게 사경을 멈췄던 적도 있다. 힘들 때 사경을 시작해 놓고, 사경을 놓았던 시점은 정작 힘들 때였다.
돈 때문에 썼고 순전히 좋아서 쓰기도 했다. 두 번째 노트 한 권은 다 채우고 싶은 마음으로 다시 볼펜을 들었다가 마음이 뜬 순간에는 어차피 다 못 채우겠구나 체념하기도 했다.
그렇게 사경을 해왔고, 그렇게 형성된 사경 습관을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최근에 엄마는 내게 사경을 다시 권했다. 취업 준비 중인 백수 처지의 딸에게 권한 새로운 딜.
반야심경 한 편 쓸 때마다 오 천 원 줄게.
나는 무슨 오천 원이나 주냐면서 칠 년 전하고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싫어? 그래도 해봐. 적으면서 그나마 불안한 마음 다스리고 좋았다고 했잖아.
솔직히 그건 맞는 말이다. 뭘 바라고 쓴 것이 아니라 저녁마다 혼자 조용히 끄적일 때 갖는 편안함이 좋아서 쓴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시 공책을 펼쳤다.
벌써 6년이구나.
두 번째 공책 첫 장에 적힌 '2020년' 연도를 보며 끊김과 이어짐이 반복된 길에 대해 생각했다. 그 길은 사념으로 가득했던 이 십 대와 겹쳐 있었다. 앞으로 몇 번을 더 써야 되나 남은 분량을 세어보니 다섯 번 정도였다.
다섯 번
다섯 번만 더 쓰면, 채우지 못할 것 같던 한 권의 공책을 완전히 채울 수 있다. 나머지 분량을 예전과 다름없이 저녁에 한 자 한 자 꾹꾹 써 내려갔다. 앞서 적은 글을 보니 어떤 때는 기분에 따라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적기도 했고, 뭘 먹으면서 썼던 것인지 국물 자국이 튄 흔적도 있었다. 날짜도 앞서 말한 것처럼 툭툭 끊기기도 했다.
모든 흔적들이 그런 것인가 싶었다. 불완전한 시간들이 어떻게 한 권의 완전으로 모여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