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억 사이에 서서

2025년 연세 노벨 위크 백일장 지원작

by 김아현

이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그 무렵에 개봉한 또 다른 영화를 보기 위해 나는 집을 나섰다. 얼굴이 아린 칼날 같은 바람과 얼얼한 추위에, 서둘러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선 채로 얼음장 같은 칼바람에 맞으며 오매불망 기다리기를 몇 분. 이내 도착한 택시 안으로 찬 기운을 머금은 몸을 넣자마자 훈기 감도는 온기가 몸을 감쌌다. 그 따뜻한 푸근함에 얼어 있던 귓바퀴와 뺨의 감각이 돌아오면서, 손아귀에 구겨진 은박지처럼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그제야 인지할 수 있었다.


곧장 영화관을 향해 출발한 택시는 카페와 마트, 원룸을 순차적으로 지나, 대학교 운동장 옆 도로를 훑으며 우회했다. 원룸촌을 빠져나가는 길목에서 부드럽게 운전대를 돌리시던 아저씨는 불쑥 나에게 물으셨다.


“서울의 봄 보러 가는 거예요?”


영화 보러 가나 봐요, 도 아니고 제목을 콕 집어 묻는 보이지 않는 의도에 살짝 당황했지만, 그래도 차분히 답해드렸다. “그 영화는 저번 주에 봤고요, 오늘은 다른 영화 보러 가는 거예요.” 그러자 아저씨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뉘앙스로 되물으셨다.


“아니, 북한군들이 내려와서 죽인 거를 같다가 애먼 사람 잡고, 안 그래요?”


서울의 봄은 12•12 사태에 관한 영화인데 뜬금없이 북한군이라니. 아저씨의 말에 갑자기 순간 이동이나 한 듯 벙쪄버린 기분이었다. 무슨 말인가 싶어 잠자코 듣고 있으니, 이내 광주항쟁을 두고 건넨 말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따뜻하던 택시 안의 공기가 서늘하게 식는 것처럼 느껴지더니, 입고 있던 코트와 스웨터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열이 일렁이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흡사 다 타버린 장작더미 사이로 조용히 흔들리고 있는 작은 불씨의 이미지와 닮아 있었다. 상체 전반으로 번져오는 더운 기운과 맞먹는 속도로, 불쾌한 기색이 치미는 걸 겨우 억누르고 있었는데, 나의 언짢아진 속을 알 길 없는 아저씨는 눈치도 없이 하시던 말씀을 이으셨다.


“물론 그때 돌아가신 분들은 안 됐지만, 그분이 아주 못한 건 아니에요. 지금 봐요. 사람들 다 어렵고, 경제도 엉망이잖아요. 그래도 80년대는 지금보다 낫지. 올림픽도 열었고, 그때부터 나라가 성장했잖아요.”


그 말이 왜 송곳처럼 아프게 느껴졌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혈을 막은 듯, 숨길 수 없는 막막함이 퍼지는 걸 느끼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급한 불을 끄는 심정으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잔잔히 흐르는 강의 물결은 번잡한 도로를 곁에 두고도 느리게 바스러지는 하얀빛 알갱이를 고요히 받아내고 있었다. 물 위에서 하얗게 번지며 깜빡이는 빛의 향연을 빠른 속력으로 지나치고 있었음에도, 이상하게 그 빛 속에서 항쟁 당시 돌아가신 분들의 잔상이 어렴풋이 비쳐 보이는 듯했다.


‘우리가 잘 살게 된 대가로, 피해자는 언제든 가해자로 둔갑되어도 상관없다는 뜻인 걸까’


안타깝게도 아저씨에게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이에 괜한 진실 공방을 벌였다간 서로의 심기만 건드릴 것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은 혼자만의 죄스러움으로 변형되어, 강 밑바닥에서부터 차오르는 무수한 하얀빛 위에 걸터앉아 천변 물길의 흐름을 하염없이 떠내려갔다.


이후로도 이따금씩, 그때의 나를 꽉 움켜쥐다가 어딘가로 사라져 갔던 죄스러움을 떠올릴 때면, 그것은 어떤 날에는 묵직한 부끄러움으로, 또 어떤 날에는 항쟁의 기억이 부재한 세대로서 느끼는 무력함으로 얼굴을 달리하여 내게 다가오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 의지하며 나약해지는 듯한 자신으로부터 잠시나마 한 발짝 물러섰다.


‘젊은 세대에게 경험의 부재는 항쟁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치명적인 약점이 되는 것일까.’


나는 이 질문을 오래 곱씹었다. 만약 지금의 젊은 세대가 민주화 투쟁의 굴곡진 역사를 직접 겪지 못했다는 이유로, 혹은 역사적 순간의 공기를 함께 마시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성세대의 혼란스러운 시대적 관점에 대해 생각할 권리가 없다고 여기는 분위기에 잠식되어 있었다면, 작년 말 44년 만에 재현된 계엄령 선포를 막는 일은 아마 어려운 일이지 않았을까.


얼어 터질 듯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정상화 촉구하며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어린 친구들을 떠올리던 어느 밤. 내내 드러나지 않을 것 같았던 질문의 답이 희미하게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느낌을 받았던 건, 과거로부터 현재를 구하는 일도 결국은 현재의 몫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기억의 힘을 먹으며 살아있는 과거는,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 기억되고 있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현재를 구할 힘을 가진 과거가 될 수도, 현재를 구할 힘이 없는 과거가 될 수도 있다. 그 사실을 안다면, 과거에 벌어진 잘못이 모습과 형태만 달리 한 채 우리 곁으로 스며들더라도, 그 시절을 살아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억의 부재를 약점으로 여겨 스스로를 주눅 들게 하진 않으리라. 힘을 불어넣어야 한다. 현재를 구하려는 과거에게, 현재가 숨을 건네야 한다. 어쩌면 그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도 아찔하게 비틀거리는 민주 사회와 보통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과거에게 용기를 건네고 있던 현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 해 겨울을 지나며 나는 새로이 곱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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