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배드민턴 사랑

제2의 안세영을 꿈꾸는 에너자이저 중년

by 김아현

어느덧 지역 배드민턴 대회에 참여한 횟수만 수 십 번. 그러나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탈락하여 벤치 신세를 면하지 못했던 엄마는, 지난여름 대회에서 또 아쉽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대회를 마치고 통화를 하면서 나는 아쉬워하고 있을 엄마를 생각해 "다음번에 다시 도전하면 되지"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러나 지극하게 보편적인 나의 위로로 엄마의 아쉬움과 분노를 다스리는 일은 애초에 어불성설이었다. "아, 씨. 이번에 승급할 수 있었는데! 아!, 합이 안 맞았어!" 진 상황에 분한 마음은 분출해야겠고, 땀 흘려서 배는 고프고. 급한 성격의 소유자인 엄마는 우걱우걱 밥을 입으로 쑤셔 넣으며 다음번엔 무조건 우승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약속이라도 하듯 소리 높여 다짐하셨다. 난 바로 태세를 전환하고 엄마를 북돋아드렸다. 무조건 승리하고 돌아오라고, 기대의 말도, 가능성을 예상한 대답도 아니었다. 그런데 통화를 하고 나서 몇 달 뒤 엄마는 기어이 해내고 말았다.

지난 8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지는 일 없이 배드민턴 레슨과 시합을 병행하시더니, 최근 전국 배드민턴 협회에 소속된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당당히 우승을 거머쥐고 승급을 하신 것이다. 대회 우승으로 인해 'B' 등급을 향한 새로운 승급의 꿈이 생기신 엄마는, 관절을 조심해야 할 '오십 대 나이'에 대한 관념과 걱정을 단박에 걷어차버리셨다.

엄마는 당장 이 기쁜 소식을 가족 톡방에 알리셨다. 사진으로 본 엄마는 마치 워터파크에서 하루 종일 놀다 지쳐서 나온 사람의 모습처럼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고, 안색 또한 약간 희어져 있었다. 다리를 보니 양쪽 다리를 테이핑 한 테이프는 불사 지른 엄마의 투혼과 함께 겨우 다리에 너덜거리며 붙어 있었다. 그렇지만 경품을 들고 우승의 기쁨을 한껏 느끼며 환하게 웃음꽃이 만발한 엄마의 표정에는 힘든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경기를 치를수록 몸 구석이 숨어있던 에너지가 숱하게 모여든 덕에 체력이 숨 죽을 틈이 없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기쁨에 한껏 고조되어 미식축구 선수에게나 볼법한 불룩 솟은 어깨 마냥 솟구치는 자신감. 그것은 마치 오래 담근 진한 매실 진액과 같은 응축된 달큼한 맛이 있었다.

작고 아담한 몸에서 어찌 저런 힘이 분출되는 것인지 신기할 정도로, 평소 움직일수록 쾌활해지는 성향인 엄마의 성실한 배드민턴 사랑은 객관적으로 봐도 완벽한 인간 승리라 불릴 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년 전만 해도 엄마는 무릎 연골에 물이 차는 바람에 통증이 생겨 제대로 걷지 못해 한 동안 고생하셨다.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퇴근 후 거의 매일 물리치료를 병행하셨고, 어떤 날에는 회원들과 복식경기를 하다 같은 팀 이모의 배드민턴 채에 눈을 가격 당해 정말 큰일 날 뻔한 적도 있었다. 까딱 잘못하다 실명될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까지 갈 뻔한 소식을 듣고는 배드민턴을 그만두는 게 좋겠다며 만류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도 배드민턴을 포기할 생각은 우주 미세먼지만큼도 내비치지 않으셨다. 나 같으면 솔직히 트라우마 때문에 포기할 법도 하건만 놀랍게도 엄마는 또다시 라켓을 드셨다.

엄마는 주 5일 일하는 것과 비등하게 퇴근 후 저녁 7시부터 10까지 매일 아빠와 함께 내가 졸업했던 초등학교 체육관에 방문 도장을 찍으셨고, 아빠가 늦게 오시는 날에는 미리 아빠의 운동복까지 챙겨가서 같이 운동하시고 돌아오시는 날도 허다했다. 아파도 빠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안 아프면 안 아픈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체육관에서 가벼운 체조를 하면서 다른 회원들이 시합하는 모습을 엄마는 지켜보시곤 했다.

다친 눈과 무릎 상태가 낫기까지는 시간이 꽤 필요했다. 운동하는 습관이야 너무 좋지만 이렇게 다치면서 까지 운동을 해야 하나 싶은 마음에 말린 적도 있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아니! 나 계속할 건데? 니 나 말리지 마라". 말리는 내가 다 무안할 정도로 경쾌한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순간 당황하며 똥이 급한 사람처럼 "어, 어! 그래, 열심히 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엉거주춤 답했던 그 순간에는 엄마가 다쳤다는 사실도 잠시 잊었다. 다치고 입원해도 너무 즐겁게 운동을 하는 엄마의 못 말리는 배드민턴 사랑에 걱정은 애초에 꺼낼 필요 없는 것이었단 사실을 깨달았던 나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그 이후로 엄마는 특별한 부상 없이 회복하시고는 다시 배드민턴에 열중하셨다.

왜 배드민턴을 놓지 않으셨을까, 이제 와서 특별히 엄마의 운동 습관의 비밀에 궁금증을 품은 적은 없지만, 한 가지 드는 생각은 이십 대 처럼 패기만 넘쳐흐르지 않는 엄마의 끈기에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잘해야 좋은 거라는 다소 극단적인 믿음 대신 재미가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거나 주변 상황이 달라져도 관심이 금세 메말라 갈라질 일이 없었던 것이다.

엄마는 지금까지 즐거워서 배드민턴을 놓지 않으셨다. 그래서 좋은 결과가 있다면 다음 단계가 더 기대되고, 중간에 목표한 대로 되지 않더라도 다음 도전 앞에 불안해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끈기는 힘이 아닌, 어쩌면 쿵후 판다의 탄력 있는 뱃살처럼 삶의 유연성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엄마는 일찍이 식어버린 관심에 어떻게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는지를, 내가 일찍이 던져버린 배드민턴 채를 대신 잡아서 몸소 가르쳐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