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생각하면

스물여섯 엄마의 열 번째 일기

by 김아현

언젠가 엄마는 동생을 낳고 찾아온 산후우울증 때문에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튀어나온 내 반응은 엄마가? 였다. 얼마나 힘들었냐 걱정하는 마음도 아니고, 위로도 아닌 의문부터 앞선 것이다. 사교성과 활달함 빼면 시체가 되는 엄마가, 에너자이저 최여사가 우울했다니. 아무리 아이를 낳은 엄마라면 겪을 수 있는 산후우울증이라지만 솔직히 엄마의 고백은 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우울과 불안으로 가득 찬 지금의 세상에서 엄마만은 어두운 그림자 같은 단어를 속속 잘만 피하는 사람이라고, 잘 피해온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럼 그렇지. 그건 딸의 선입견으로부터 비롯된 완벽한 착각이었다.


나에겐 그 시절에 우울했다던 엄마의 모습이 왜 그리도 생소하게 다가왔을까. 믿기지 않았던 것 같다. 워낙 사교쟁이여서 어떻게든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야 에너지가 채워지는 활발한 성격에, 심지어 낙관적이기까지 해서 엄마의 행복 시계는 매사 지금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쳤다는 의미가 아프다는 의미와 동일할 정도로 몸져눕기 전까지 밖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 바로 엄마였으므로, 흔히 보는 우울과 불안 같은 단어가 엄마랑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게 느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놀라움과 의아함 뒤섞인 오묘한 표정으로 웃을 듯 말듯한 눈을 꿈뻑이며, 약간 촐싹 맞은 말투로 진짜?를 막 연발했다. 사람은 평생을 봐도 모르는 구석이 있다는 말이 새삼 실감하던 순간, 엄마는 나의 촐싹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슨 쓴 음식이라도 한 입 먹은 것처럼 미간과 눈가를 찌푸렸다. 냉정한 평가자가 같은 표정이었다. 카페였는지, 부엌 식탁에서 마주 보고 앉아 들었던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의 말만은 기억한다.


으휴~ 그때는 진짜 애 키우느라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차도 없지.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니까 진짜 너무 우울해지는 거야. 네 동생 엎고 손잡고 시장 돌아다닌다고 나가긴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니는 옥포 살 때가 추억이고 좋았겠지만, 엄마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당시로서는 살짝 서운하긴 했지만, 애 둘을 키우던 이십 대, 삼십 대 엄마로서 겪었을 심적 무게는 결코 무시될 수 없는 부분이란 것을 알기에 이해하고 넘어갔었다. 그러다 글을 쓰면서 나는 엄마한테 카톡으로 다시 물었다. 몇 개월 되지 않는 아들 포대기로 엎고 딸 손잡고 다니던 옛날 생각하면 어떠냐고, 다시 하라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엄마의 답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응,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고, 지금은 더 잘 놀아주고 더 좋은 것도 보여주고 , 더 좋은데 데리고 가주고(그렇게 하고 싶어).

아니, 진짜야? 옥포에 살 대 힘들었다며, 다시는 안 돌아가고 싶다고 하더니.

자유를 생각하면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만약에 가게 된다면 그런다고.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데, 돌아가면 다시 잘해주겠다는 엄마의 답. 난 여기서 더 물어보지 않았다. 잘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미 충분하니까. 애틋함 때문일까? 아니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휘둘렀던 매에 대한 후회 때문일까.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엄마의 마음에는 정리되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있는 듯 느껴졌다.


그동안 옛날에 힘들었던 기억들과 완전히 등을 돌린 줄로만 알았는데. 엄마는 분명히 힘들었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 시절을 완전히 버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돌아간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그 마음. 그것은 단순한 모순이 아니라, 사랑했던 사람만이 가지는 이중적인 감정인지도 모른다. 돈 때문에, 자유의 박탈과 개인의 시간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결혼과 육아를 기피한다고 말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는 잃을지도 모르는 그 자유마저도 기꺼이 내어줄 만큼 간절해지는 일이 결혼이고, 육아일 수도 있다고. 이중적인 마음속에서도 어쨌든 사람은 사랑을 하는 존재인가 보다.


PS. 그럼 이중적인 마음인 거네,라고 말하니 엄마는 이중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삼, 사중이 아닌 게 어디야. 다중인격이 아닌 게 어디냐고, 라며 되받아쳤다.


[스물여섯 엄마의 열 번째 일기 전문]

1996.7.3. (수)


열흘만 더 있으면 우리 아현이가 태어난 지 2달째야. 세상 빛 구경한 후로 시간이 참 빨리 가지? 요즘은 말 시키면 제법 많이 웃기도 하고,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옹알이도 한단다. 울 때는 눈물도 흘리고, 옆에서 말 시키면 좋아하고 조금 자리를 뜨려고 하면 울기도 하고 그래. 눈 마주치고 말을 걸면 자꾸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신기해서 눈을 뗄 수가 없단다. 말똥말똥한 아현이 눈망울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이 다 맑아지는 기분이야. 빨리 100일이 지나고 널 데리고 밖에 나가고 싶다. 시장에도 가고 엄마랑 친한 이모들도 만나고 싶고, 부산 외할머니댁에도 가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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