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있었는지도 모르게

스물여섯 엄마의 열한 번째 일기

by 김아현

현관문이 열리고, 앞서 들어간 엄마를 따라 동생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전과 달라진 것 없어 보이는 풍경이었지만, 그간 빨라진 집의 낙후 속도는 현관문까지 그대로 전달되었다. 어둡고 적막한 집 안. 할아버지는 안방 이외의 모든 방의 불을 꺼두신 채 생활하고 계신 듯 보였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뒤로 삼 년이 지났으니 할아버지 혼자 계시는 집은 적막감으로 채워지기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조용하지만 평온과는 거리가 먼 집은 서서히 사그라지는 빛 같았다. 명절이 되면 잠시 살아나지만 곧 다시 가라앉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음이 실감되는 듯했다. 무색함을 입은 시간이 바로 세월이겠구나 싶은 씁쓸한 생각이, 등 뒤로 천천히 닫히는 현관문의 속도와 발맞춰 떠올랐다. 그대로 서서 문이 다 닫힐 때까지 서 있을 수도 있었지만, 인기척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할아버지 때문에 생각에 젖어들 여유는 곧 사라졌다.

엄마는 이미 두세 번 불러도 대답이 없는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아버님'을 외치며 빠른 걸음으로 거실로 향하셨다. 따라 들어간 거실 안쪽에서 다행히 천천히 움직이는 할아버지의 어두운 실루엣을 발견했는데, 어두컴컴한 거실에 불이 들어오자 그제야 이 집에 아직 버틸 힘이 있음을 확인하며 안심했던 것 같다.

엄마는 할아버지를 향해 "왜 이리 어둡게 계세요?"라고 말하며 거실 조명을 켜셨다. 엄마 말을 들으셨는지, 듣고도 모른 척하시는 건지 할아버지는 답이 없으셨다. 못 뵌 사이 귀가 어두워 지신 것 같았다. 며느리의 물음에도 맹하신 듯 보였고, 나와 동생의 인사에도 반응이 많이 느려지신 모습이었다. 결국 할아버지는 왜 어둡게 하고 계셨냐는 엄마의 걱정과 인사가 섞인 물음에 어벌쩡한 모습이셨고, 그 대신 소파에 앉아 나의 손을 잡으시곤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다.


듣는 것에 가까운 대화였다. 과거 학교 교장선생님이셨던 할아버지 셨기에, 말씀만 하시면 훈화시간이 돼서 오직 '네'라고 대답하는 일과 인내가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시선은 다른 쪽을 향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거실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산수화 액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걸려 있던 산수화 액자, 족히 사십 년은 된 물건이었다. 사람은 이렇게 늙었는데 액자는 여전하다는 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것도 사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묘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언제부터인가 액자 아래 틈새를 따라 나를 포함한 친척들과 아빠 형제들의 옛 사진들을 줄지어 꽂아 넣으셨다. 평소 살아보지 않은 시대에 대한 동경이 있는 나로서는 옛날 사진을 보면 신기해서 보고 또 보는 편이다. 할아버지의 오래된 결혼식 사진이 그렇고, 젊을 적 할아버지와 할머니 앞에 서있는 어린 아빠와 삼촌의 모습이 그러하다. 그런데 어찌 그 사진이 전보다 좀 더 늘어난 듯 보였다. - 60년대 ~ 70년대로 추정되는 가족사진(흑백과 컬러)은 안 쓰는 탁상달력 한 면에 테이프로 붙여 선반에 올려놓으셨다 -

그 가운데는 내가 돌 때 찍은 사진도 두어 장 꽂혀있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사진도 있지만 할아버지 댁에서 본 사진은 다른 각도에서 막내 삼촌과 어린 친척, 할머니와 정면에서 함께 찍은 것으로 집에는 없는 사진이었다. 처음 본 사진 같았다. 아닌가?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렇게 느껴졌을 거라고 믿고 있지만, 그때는 이미 나에게 첫 사진과 다름없었다.

저녁에 친척들과 오래간만에 모인 자리에 맥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익숙하면서 그 생경한 돌잔치 사진이 화두에 올랐다. 엄마도 기억이 가물가물 한 듯 "이때 도련님도 계셨었네? 어머님, 아버님도 다 오셨고, 형님네도 있었네?" 라며 신기한 듯한 반응이었고, 나야 너무 어릴 때라 사진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어서 그저 어른들의 반응을 볼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훈훈하고 재미있었다.

"그때 내가 얘 앉고 찍은 사진이라니까, 이거 봐 이러고 있네!"

친척들 왔다고 가져온 와인을 마시고 취기가 오른 삼촌은 가족들이 기억 못 하는 장면을 기억하고 있는 자신의 기억력에 꽤 뿌듯함을 느끼시는 듯 보였다. 왜 기억이 안 날까, 사진을 보면서도 갸우뚱하는 기색의 엄마를 보며 자신감으로 상기된 얼굴이었다.

"얘를 이렇게 안아서 다 같이 찍었다니까"

"와, 도련님 기억력 진짜 좋으시네! 난 처음에 보고 어머님이 왔었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까 기억난다"

폴라로이드로 찍은 사진의 형상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처럼 돌잔치를 했던 그날의 상황이, 엄마의 기억 속에서 선명해지고 있었다.

한복을 입었고, 지금과는 다르게 집에서 상을 다 차려서 보낸 돌잔치였고, 가족과 함께 보낸 날이란 정도는 기억할 순 있어도, 기억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파편적으로 쪼개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개개인마다 기억할 수 있는 범위와 기억의 디테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들고 떨어진다. 사진이 있어도 사진의 장면 또한 그날의 한 조각일 뿐, 전체적인 모습을 대신할 수는 없다.

지금껏 집에 있는 사진으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서 그 장면이 전부인 듯 빈틈을 메꾸어 보곤 했었다. 나도 모르게 메꾸었던 그 빈틈에 실제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는지, 그 속에 뒤늦게 깨달은 행복 같은 것이 숨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걸 알면 더 단단해질 것 같은데, 행복은 있었는지도 모르게 흘러가버린다.


[스물여섯 엄마의 열한 번째 일기 전문]


1997.5.13.(화)


우리 딸 돌잔치 하는 날!

많은 시댁식구들이 아현이 돌잔치 축하해 주러 멀리서 오셨다. 한 달 전부터 이것저것 다 준비를 했지만 막상 많은 분들이 오셔서 1박을 하기엔 공간이 좀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불편하지 않게 먹거리며 이부자리며 신경이 많이 쓰였다.
자주 볼 수 없는 손녀가 많이 컸다며 눈을 떼지 못하시는 시보모님. 거제도는 처음 와본다며 바다가 이쁘다고 하시는 형님네 식구들. 서울에서 내려온 동서네. 항상 바쁘게 사시는 막내 도련님네.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을 텐데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집에서 음식을 정성스레 만들어서 돌상을 멋지게 차리고, 남편과 나는 결혼식 때 입었던 한복을 차려입고, 예쁜 딸 아현이는 할머니가 장만해 주신 화려한 한복을 입히고 가족모두 모인 자리에서 돌잔치를 했다.

오늘의 주인공인 아현이는 울지도 않고, 돌잡이 물건(돈, 실, 연필, 장난감 청진기, 장난감 마이크, 공,)에 관심이 많았다. 돌잡이를 하는 순간 냉큼 연필을 잡았다. 내심 돈도 잡기를 바랐는데 연필을 잡고 만족해한다.
공부를 잘하려고 하나 보다라며 다들 한 말씀씩 하신다. 할아버지가 교장선생님이시니 할아버지처럼 공부를 잘하려고 하나보다 라고 누가 말을 했더니 할아버지가 아주 흡족해하시며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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