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엄마의 열두 번째 일기
엄마는 마치 거울을 보듯 자식의 모습에서 자신의 옛 모습을 마주한 것 같았다. 자식의 얼굴 위로 당신의 얼굴을 포갠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엄마는 모른다.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버랩된 서로의 얼굴 간의 교집합이 어떤 형태를 띠는지도 마찬가지다. 단지 엄마 자신의 옛 모습이란 것이, 살면서 후회했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집합체란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웬만한 상황을 낙천적인 태도로 수용하는 엄마지만 그녀도 가끔 후회라는 것을 한다. 그 후회는 걱정과 한데 뒤섞여 무슨 감정 상태인지 규정할 단어를 찾기 어려운데, 엄마가 그런 번민의 상태에 빠지는 이유는 남동생의 식습관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고기반찬만 고집하는 동생의 유아적인 편식은, 엄마의 오래된 골칫거리였다. 명절 휴일에 오래간만에 모인 자리에서 닭가슴살 세트로 연명하듯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는 동생의 말에 엄마는 급기야 훗날 동생이 나이 들어 대장암이라도 걸리는 건 아닌지 심히 염려하기까지 했다.
엄마는 심각해진 말투로 그렇게 살면 몸 다 망가진다, 채소 안 먹고 고기, 술, 담배로 산 사람들 나중에 다 암 걸리는 거 못 봤느냐, 젊은 몸 믿다가 큰일 난다며 동생한테 갖가지 걱정 어린 충고를 날렸다. 그 충고가 꽤 직설적이었음에도 동생의 표정은 미동도 없었다. 무슨 시멘트 벽을 보는 듯 엄마의 충고는 그대로 사방으로 튕겨져 버렸다.
어차피 듣지 않을 이야기임을 모자(母子)가 투닥거리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예감하고 있었다. 끝내 몸 생각해서 앞으로 잘 챙겨 먹겠다는 답을 듣지 못한 엄마는 내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끌어올린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 한숨이 그저 답답함에서 비롯된 신체적 반응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엄마는 동생의 편식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여겨왔다. 콤플렉스였던 자신의 작은 키와 약한 체력을 어릴 적 편식 탓이라고 생각했기에, 동생의 편식 또한 그 내력을 물려받은 결과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후회했던 행동을 자식이 똑같이 하고 있다면 어느 부모가 좋아할까. 엄마는 편식하는 동생을 보며, 아주 깊은 후회는 아니더라도 좀 어릴 때 골고루 먹게끔 조치를 취할 걸 하며, 당시의 현명하지 못했던 육아 방식을 혼자 되짚는 듯했다.
하지만 떠오르지도 않는 기억을 억지로 꺼내려니 곧 머리가 아파진 엄마는 "에잇! 지가 골고루 안 먹는 게 왜 내 탓이야, 나는 이것저것 잘 줬어. 지가 안 먹은 거야"라며 동생의 편식 문제를 단숨에 동생 책임으로 돌려버렸다. - 엄마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여도 어느 정도 엄마의 말이 사실인 게 정말 동생은 주는 대로 잘 안 먹는다 - 그리고 짧고 까다로운 입에 대한 타박은 반대로 어릴 적부터 불평 없이 주는 대로 잘 먹었던 나를 향한 만족스러움과 애정으로 치환된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여전히 동생의 식습관을 걱정하는 엄마여도, 한 두 달에 한 번 본가에 내려오는 동생이 전부터 틈틈이 LA갈비를 해달라던가 닭볶음탕을 해달라는 부탁을 끝내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취방에 혼자 살면서 고기 먹기가 쉽지 않은 나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혼자서도 본가에서도 고기를 먹는 동생을 걱정하는 일에 가담이라도 하면 엄마는 그래도 먹고 싶다는데 해줘야지,라는 식으로 답하곤 한다. 고기만 먹는 아들이 못마땅하지만 원하는 것을 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의 책임감은 아이러니하게도 모순적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봤자 매번 엄마는 일치감치 집 주변 마트에서 양념 갈비와 실한 닭다리를 고르고 있으니, 나로서는 가끔 그 모정(母情)의 형태가 이성적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변덕스러운 오로라의 물결로 느껴질 뿐이다.
[스물여섯 엄마의 열두 번째 일기 전문]
1997.9.10.(화)
16개월 우리 아현이는 이유식과 일반음식 그리고 간식등 편식하지 않고 다양하게 잘도 받아먹는다.
내가 어렸을 때 편식이 심해서 몸이 약하고 항상 아팠던 기억이 있어서 우리 딸만큼은 건강하게 키우려고 영양가를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챙겨 먹이고 있다. 뱉지 않고 맛있게 잘도 먹어주니 고맙고 예쁘다.
무엇이든 혼자 먹어보려고 해서 숟가락을 주면 반이상 흘리고 입에는 조금 들어간다. 그걸 보고 있기가 힘들어서 도와주면 “내가~ “하면서 손을 밀치려고 한다. 혼자 해보려는 의지가 강하다.
요즘 잠투정이 심해져서 재우기가 힘들어졌다. 처음엔 모유를 어떻게든 먹이려고 애를 썼는데, 모유에 적응하고 나서는 배고플 때나 잠투정할 때나 목이 말라도 모유부터 찾는다. 주위에 봐도 모유를 이렇게 오래 먹이지는 않는 분위기인데, 애타게 모유 찾는 딸을 보면 모질게도 못하겠다. 모유를 어떻게 뗄까의 문제가 요즘 큰 고민이다. 젖가슴에 빨간약을 발라놓으라고 하는 주위의 조언은 하고 싶지가 않다. 모유를 대체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