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엄마의 열세 번째 일기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저녁이었다. 갑자기 울리는 전화에, 본능적으로 구석진 곳을 찾는 동물처럼 빠른 걸음으로 건물 안쪽의 철제문 뒤로 몸을 숨겼다. 끊길 듯한 신호음에 서둘러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엄마였다. 모녀의 통화는 늘 장소와 타이밍에 관계없이 예측불허이다. 도서관이라고 예외는 없다. 통화 내용이야 늘 그렇듯 오늘 뭐 먹었느냐, 뭐 했느냐, 그러면 지금은 뭐 하느냐 같은 일상적인 질문이 단계적으로 오가는 핑퐁식 대화이지만, 그런 대화라도 해야 하루가 마무리된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모녀 모두 똑같다.
사실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대화엔 별 내용이 없다. 그날도 핸드폰을 가운데 두고 몇 번 주고받으면 끝날 대화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엄마와의 통화는 금방 끊어지면 어색해진다. 매번 그렇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몇 초 뒤에 끊길 통화가 아쉬웠다. 조금 더 통화를 길게 끌고 싶은 마음에, 쓰고 있는 연재 글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대화의 흐름은 물 흐르듯 육아일기로 바뀌었다.
글을 쓰면서 모녀의 연결고리가 하나 더 늘어난 것 같은 요즘, 엄마의 예전 글에 이런저런 질문이 많아진다. 아침마다 강제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부모들, 깊이 잠들지 못해 새벽마다 깨는 아기를 달래느라 고생하는 부모들의 노고를 몰라서 비롯된 질문이 아닌, 순수하게 궁금해서였다.
잠투정했던 어린 나를 때렸냐고 물은 것도 그렇고, 젖을 뗄 시기가 되었는데도 젖에 집착해서 엄마를 난감하게 만든 일도 그렇고. 나에겐 없는 세계지만, 엄마에겐 여전히 생생한 그 세계에 대해서 궁금해서였다.
엄마도 엄마의 엄마, 즉 외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다가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모습을 언젠가 본 적이 있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를 두고 "에이, 엄마~ 진짜 그랬다고? 아닌데, 그게 아니라~" 하며 할머니와 어긋난 기억을, 억양도 센 부산 사투리를 써가며 치열하게 맞춰보려 애쓰던 모습이었다. 그것은 꼭 나와 엄마의 대화 같았다. 왜냐하면 나 또한 엄마한테 진짜? 내가? 정말로? 같은 놀란 뉘앙스로 되물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능글스러우면서도 차분함이 깃든 말투로 내 질문을 되받아쳤다. "네가 어지간히 잠을 안 잤어야징~ 엉? 십육 개월인데 엄마 모유를 찾지 않나. 그러면 되겠어, 안 되겠어?"
엄마 말에 큭큭거리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웃음과 공감 사이에서 감정 포지션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난감해졌다. 이제는 한 줌의 이야깃거리가 되어버린 젊은 엄마의 고충은, 그 흐릿한 윤곽만을 유지한 채 멀리서만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사실을 인지해야 했다. 그 순간에는 엄마의 대답에 "내가 그랬었구나" 속으로 인정하는 마음과, 그래도 때릴 것 까지야 있나 싶은 마음이 교묘하게 섞이고 있었다.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는 사람은 핸드폰 너머에 있고, 나에겐 순간의 기억조차 없다. 게다가 고집도 어지간히 센 고집이 아니었다는 엄마의 증언은 나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으므로 개월 수에 맞지 않는 행동으로 엄마를 피곤하게 만들었네, 그럴 만도 하셨겠다고 이해를 해야 했다.
젖에 집착했던 나를 어떻게든 젖을 떼어보려, 잠들지 못해 칭얼거리는 나를 어떻게든 재우려 애쓰다 손찌검까지 하게 된 엄마의 속사정은 시간이 흘러 웃픈 이야기가 되었어도, 한없이 느리게 흐르는 시간만을 향해 뻗었던 촉수를 스물여섯 된 엄마가 감당하기엔 엄마 역시 어린 나만큼 미숙했을 것이다.
손찌검했던 날을 꺼내며 엄마는 자신의 미숙함을 털털하게 고백했다. "아니, 너는 울고 있지. 피곤해서 순간 그랬는데, 그때 엄마가 뭘 알았겠니! 스물여섯에 뭣도 모르고 애를 낳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잖아."
이해한다. 육아의 조언을 오로지 책을 통해서만 접하던 시절이었으니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이해한다. 그런데 웃음이 계속 나온다. 그때 엄마는 "아!" 하며 웃긴 이야기라며 친한 이모들과 나눴던 대화를 말해줬다. 말을 하려 하니 엄마는 생각할수록 웃겼는지 중간에 웃느라 숨을 들이쉬는 바람에 말과 말 사이의 간격이 벌어졌다.
"아마 그때 엄마도 그렇고, 주변에 애 혼내면서 키운 엄마들도 그렇고, 지금 같으면 다 고소당했을 거야. 팬티 바람으로 쫓겨나고, 울고...... 너만 그런 게 아니라 유리도, 정남이도 다 그랬잖아. 요새 그랬으면 다 아동학대로 끌려갔을지도 몰라."
솔직히 글에는 엄마한테 혼나고 맞은 이야기도 적지 않게 많다. 부정하기엔 엄마도 나이 들면서 당시의 부족함을 최근에서야 인정했으므로 어떻게 덮을 길은 없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같이 전문가의 육아 조언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감정 읽기는 호사였으며, 생각하는 의자를 집에 두기엔 그런 고급 육아 기술을 가진 부모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이십 년 전까지만 해도 맞고 자라는 것이 너무 당연했었다. 맞는 것도, 때리는 것도 그때 당시로는 좋은 쪽으로 포장이 수월했다.
하지만 그랬던 시절에도 훈육과 사랑의 딜레마는 엄연히 존재했으며, 딸아이를 혼낸 뒤의 편치 않은 마음을 육아일기에 조용히 풀어내던 부모가 있었다. 엄마는 과거를 회상하면 미안한 감정이 가끔 일기도 하는지, 나에게 "다시 태어나면 더 잘해줄게"라며 반성 어린 의미로 이따금씩 마음을 표현한다.
돌아갈 수 없다. 그렇지만 옆에 있으니까 기회는 여전히 유효하다. 사랑이라도 매번 같은 얼굴을 할 수 없다. 가끔은 밑바닥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견뎌야 하는 시간을 만나기도 하지만, 사랑의 윤곽이 진동으로 일그러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옆에 있으니까 더 잘해주겠다는 약속이 가능하고 기회를 쥘 수 있는 것이다.
그걸 알 나이가 되었을 즈음, 잘 자라주었으면 하는 부모의 보편적인 바람이 훈육 앞에서 어떻게 연약해지고 흔들리는지 겨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스물여섯 엄마의 열세 번째 일기 전문]
1997.9.26.(금)
오늘도 모유를 찾는 딸아이와 어떻게든 그만 먹이려는 엄마와의 갈등이 있었던 힘든 날이다. 순간순간 마음이 약해져서 내가 편하고자 품을 내어주기도 하지만, 너무 행복해하며 정서적 안정이 되는 걸 보면 되려 마음이 복잡해진다. 딱 오늘까지만 먹여야지,라는 다짐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있다.
오늘은 조금 냉정해지기로 하고, 칭얼대고 잠투정하는 아이를 업고 왔다 갔다 아무리 해도 안 자고 짜증만 낸다.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몇 대 때렸더니 더 크게 운다. 울다 잠든 아기를 살짝 내려 재우고 엉덩이를 확인했더니 조금 빨갛다.
화가 난다고 아이한테 손을 대다니.
후회가 큰 돌덩어리로 가슴에 내려앉았다. 속이 상해서 자는 아이 옆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아야지 다짐을 해본다. 육아가 힘들어진다. 옆에 친정식구들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남편한테 낮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더니 힘들겠지만 아이한테 손을 대지 말라고 당부한다. 오늘은 정말 나쁜 손 엄마. 단호함 뒤에 미안함과 안쓰러운 마음이 더 크게 자리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