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음의 뒷면

스물여섯 엄마의 열네 번째 일기

by 김아현

지난여름, 나는 24년 전 부모님께서 구입하셨던 비디오 캠코더 테이프 6개를, USB 파일로 변환을 했다. 뽁뽁이로 테이프를 하나하나 말아서 재활용 종이곽에 넣고는, '테이프 6개, 변환부탁드립니다'라고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 업체로 택배를 보냈었다.

우체국에 가기 전날, 캠코더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나는 캠코더를 재생해 보았다. 전형적인 스타카토식 기계음이 울리는 걸 듣고는 일차로 안심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 앞으로 빨리 감기를 해보니 소리가 뭉개지거나 아예 들리지 않는 구간이 있었고, 화면 또한 지지직 거렸다. 방치한 그 몇 년 사이에 필름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진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이 상태로 또 시간이 흐르면 분명 필름의 상함 정도가 심해질 것이다. 그 생각에 나는 순간 마음이 조급해지는 걸 느꼈다.


처음엔 쿠팡에서 구입한 캠코더 파일 어댑터로 변환을 시도했었다. 뭣도 모르고 2시간 정도 씨름을 했는데, 결국 혼자서 변환하는 건 불가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업체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때였다. 곧장 업체를 검색하고는 괜찮아 보이는 곳을 한 곳 찾아서 택배를 부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택배로 테이프를 보내고 약 일주일이 되어가던 날, 업체로부터 연락이 왔다. 안 좋은 필름 상태에 예감하고도 별 문제없을 거라 희망적인 기대를 했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예상에는 보란 듯이 실금이 가고 말았다. 나는 첫 번째 테이프의 필름이 많이 손상되어 있었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야 말았다. 조금 낙담을 했다. 그것은 없어진 기억의 자리에는 언제나 캠코터 테이프 속 기록이 대신하고 있다고 여긴 지난 안일함의 대가였으리라.


다행히 나머지 테이프의 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말에 이내 안심할 수 있었다. 손상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파일을 열어보면 알 일이지만, 그래도 이따금 생각날 때마다 돌려보곤 했던 장면을 더 이상 볼 수 없음을 생각하니 그 아쉬움은 준비되지 않은 어떤 급작스런 이별처럼 쓰게 밀려왔다.

테이프는 보낼 때 모습 그대로 도착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USB를 조심스럽게 컴퓨터에 연결했다. 그리고는 폴더 파일을 열었다. 파일 안에는 1에서 6까지 적힌 영상이 테이프 수와 똑같이 여섯 개가 담겨있었다. 영상을 하나씩 재생했다. 문제의 첫 번째 테이프는 원래 분량의 절반이 날아간 상태였다.

사라진 영상 분량에는 이미 멀어진 인연들과 어린 나와 동생, 그리고 사촌들, 친척들의 젊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만나고 보낸 시간은 흔적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그걸 생각하니, 이 영상을 나 혼자 즐기기엔 아까워서 친척들이 나오는 장면을 일부 잘라서 카톡으로 공유를 해주기도 했다.


나는 간단한 편집을 하면서 과거의 천진난만했던 내 모습을 보고 또 보았다. 춤도 곧잘 추고, 흥도 많고, 엉뚱한 짓을 즐기고, 조잘조잘 말도 많은 아이였다. 중고등학생 무렵 어두운 시기를 지나면서 어둠에 탐닉하는 기질이 발현되기 전의 나는 그랬었다.

하지만 사춘기의 시절의 어려움은 결국 이후 이십 대와 삼십 대의 나를 형성하는 굵은 주축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지금까지 나는 나 자신을 진지한 인간, 내성적인 인간, 혼자일 때 편함을 느끼는 인간으로 주변인들에게 소개해왔다. 어린 시절의 활달함, 사교성, 유쾌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어느 순간 자신을 떠올려 보면 그 이미지는 애늙은이와 비슷한 형상을 띄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애늙은이를 닮은 성격을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착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나에게 다른 면모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예전을 생각하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라고 의문한 적도 없지 않지 않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건대, 아마 십 대 시절에 줄곧 나를 힘들게 한 인간관계에서의 미숙함과 그 밖의 정신적 방황이 성격 변화의 서막인 듯싶다. 치열한 육박전을 벌이며 학교에서의 모든 생활이 마쳐질 때까지 그 어려운 시간을 버텼던 것이, 성격을 그렇게 무겁게 만들었던 것은 아닌가 짐작해 본다.


그럼에도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나는 밝은 아이였다고 한다. 이미 유년의 기억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휘발되어 버린 이후라 직접적인 기억은 거의 없지만, 살아오며 부모와 친척들로부터 들은 천조각 같은 증언들을 한데 모아 맞춰본다고 가정했을 때, 조금씩 어긋나는 부분은 있더라도 그 이미지의 중심에는 늘 밝았던 내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옛날과 지금의 나를 교차해서 바라본다. 환한 공간에서 환한 감각이 무뎌지는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듯, 사람도 한 없이 밝을 때는 자신의 밝음을 인지하지 못하지 않는가. 만약 밝음이 밝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내가 밝은 아이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1998. 12.15. (화)


엄마는 아현이가 동화 얘기 해줄 때가 제일 재미있어.

“엄마! 옛날에 토끼가~북이가~살았다. 토끼는 깡꿍깡꿍 하고, 북이는 엉글엉글 했다?”

발음도 제대로 안되면서 열심히 해주는 동화 얘기 엄마는 너무너무 재미있어.
군산 친할머니 전화 오셨을 때 아현이 얘기를 들려드리면 크게 웃으시며, 전화 바꿔서 할머니한테도 해달라고 하시고 영도할머니도 박장대소하며 웃으신단다. 다음 동화얘기도 기대할게.


오늘은 TV에서 여러 가지 춤이 나왔는데 아현이가 너무 잘 따라 해서 엄만 놀랬어.

어떻게 저걸 다 따라 하지 싶어서 귀엽고 신기하기까지 해.

얼마니 이쁘고 귀엽게 추는지 아빠도 보셔야 할 텐데 아빠는 지금 외국 출장 중이셔.

아빠 오시면 깜짝 공연을 해드리자?

아빠의 피로를 다 풀어드리는 아현이 공연, 아빠도 엄청 좋아하실 거야.

건강하고 밝게 자라고 있는 우리 아현이 덕분에 엄마는 웃을 날이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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