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엄마의 스무 번째 일기
2000년의 문턱을 막 넘어서던 즈음이었다. 이미 달라진 것들이 있었고,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며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숱한 변화를 앞에 둔 과도기 속에 있으면서 무엇이 바뀔 것이고, 바뀐 세상에 있는 자신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갈지 상상하는 일은 어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탐험하는 느낌과 맞닿아 있었을 터. 그러면서도 여전히 지금으로서도 이해하지 못할 관념 하나는, 당시의 저변에 녹지 않은 싸락눈처럼 얕게 깔려있었다.
카페 창가에 앉아서 한 눈 팔면 머물다 사라지는 사람들과 시시각각 지나가는 버스를 내려다보았다. 문득 하나의 관념이 부서지기 위해 요구되는 시간은 얼마나 길까, 깨질 듯 깨지지 않는 그것의 두께를 내 작은 손 한 뼘으로 가늠해 보았다. 그것은 70년대와 80년대만큼 두텁게 깔려있는 남아선호주의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둘째를 가진 엄마가 은근히 남자아이를 바라던 그 마음이었다.
다행인 건, 엄마가 구닥다리식 옛 관념에 쉽게 먹혀들 만큼 자아가 약한 분은 아니셔서 한 때 남자여야 한다, 여자여야 한다는 이상한 고집을 가지셨더라도 동생을 가졌을 때 잠깐하고 폐기처분 하셨다는 것이다.
엄마가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아들을 가졌단 소식을 들은 순간 혼자 기뻐했다는 사실을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과 기뻐한 엄마에게 특별히 서운함을 가지거나, 그녀의 기쁨이 차별로 다가오는 일이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기성세대의 남녀 차별로 인해 존재를 부정당한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남동생과 나를 큰 차별 없이 대해주셨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대우가 아닌 것이다. 지금은 딸을 다 키워낸 엄마로서, 그 딸과 함께 투닥거리면서도 놀러 갈 여행지를 구상하는 여행 메이트의 역할을 즐기시고 계시니 딸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의 부러움도 주변에서 심심찮게 받고 계시는 중이시다.
그럼에도 응어리가 있다고 말하면, 그건 잔여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단단하게 뭉쳐진 알맹이라 아니라 공차 밑바닥에 수북이 깔린 펄 같은 질감의 알갱이 같은 것일 거다. 충분히 받았음에도 빈 공간을 기어이 찾아 끝없이 내려앉으려 하는 관습적 관성.
다섯, 여섯 살 무렵.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기엔 무너져야 할 생각의 경계들이 수두룩했던 시절의 사회는 여자 아이를 핑크색과 치마에, 남자아이를 파란색과 바지에 대입시켜 바라보는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성별에 따라 부여된 역할의 경계는 의외로 견고했고, 당연히 개인의 의지로 쌓인 벽은 아니었다. 그 벽은 동년배 또래들과 흙바닥 놀이터에서 정신없이 장난치며 노는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내게 가지지 않아도 될 마음을 안겨주곤 했다.
'남녀 공용'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였다. 내가 만약 총과 칼과 로봇에 쉽게 설렘을 가지지 않는 아이였다면. 바지를 입는 것을 특별히 편안하다고 여기지 않고, 치마를 좋아하는 그런 여성스러운 기질이 깃든 아이였다면. 보통의 여자들처럼 화장품과 옷에 관심이 많아서 올리브 영과 옷가게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인간이었다면 아마 굳이 껴안지 않아도 될 마음이었을 것이다.
여자가 축구를 하면 남자 같으니까 이상하고, 남자가 꽃꽂이하면 여자 같으니까 이상하다는 생각. 여자는 여자에게 어울릴 만한 행동이 있고, 반대로 남자도 남자에게 어울릴 만한 어떤 행동이 있다는 생각. 성별을 기준으로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을 구분 짓는 행위들로 인해 굳이 껴안지 않아도 되었을 마음들이, 그렇게 생겨났다는 사실은 지금 곱씹어도 슬프다.
지금도 여전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은 것을 안다. 나는 여성스러움을 그다지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다.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 나는 왜 여성스럽지 못할까 하는 생각으로, 그렇게 불호하는 치마를 중학교 삼 년 내내 억지로 입었으며, 고등학생 때는 여학생들에게 막 허락한 바지형 교복에 기뻐하며 졸업 때까지 바지를 입고 다녔다. 한 반에 바지를 입은 여학생은 나 밖에 없었다. 그때 엄마한테 들은 말은 "너는 시대를 앞서갔다."였다. 바지를 입은 나를 보고 선생님 한 분이 주변 친구들에게 "너희들은 왜 바지 안 입어? 편하잖아."라고 이야기했을 때, 다 같이 미리 계획이나 한 듯이 나를 향해 절레절레 고개를 젓던 친구들의 고갯짓을 나는 기억한다. 단지 바지를 입었을 뿐인데 옷 하나로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벽을 선사한다. 옷가지 하나에 갈라질 정도로 얄팍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내면을 그 순간 처음 알았다. 다름이 은근한 슬픔으로 변모하는 것을 느끼며 학생이던 나의 앎은 거기서 멈췄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나 어느 날 우연히 시내버스 안에서 친구들과 천연덕스럽게 조잘거리는 중학생 친구들이 하나 같이 교복 바지를 입은 모습을 보고는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 얄팍함은 그 자체의 얕은 깊이 때문에 자연스레 다른 무언가로 채워져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남녀 공용이라는 혁신적인 용어가 금방 대중 속으로 녹아들어 버린 것처럼.
[스물여섯 엄마의 스무 번째 일기 전문]
2000. 11. 18.(토)
저녁준비를 하는 바쁜 엄마를 도와주는 아현이. 이제 겨우 5살인데 말린 빨래를 걷어 놨더니 고사리손으로 하나하나 예쁘게 개어서 각자 자리에 넣어두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하는 걸 잘 보고 있었나 보다. 너무 기특한 우리 딸! 동생이 뱃속에 있어서 엄마가 힘들까 봐 도와주려는 마음이 너무나 예쁜 딸이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엄마한테 태어나줘서 고마워.
요즘 아현이는 책을 좋아한다. 공부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눈높이 학습지를 시작했다. 놀 때는 남자아이처럼 동적인 놀이를 좋아한다. 장난감 가게를 가면 총이나, 칼, 그리고 로봇을 고른다. 예쁜 인형을 골라주면 싫어한다. 아무거나 잘 먹는다. 특히 치즈를 좋아한다. 옷을 사러 가면 분홍색은 절대 안 고른다. 치마도 싫어한다. 공주처럼 예쁘게 키우고 싶은데...
아현이 노는 걸 보시고 이웃 아주머니들이 뱃속의 동생이 남자아이 같다고 하신다. 아현이한테 “엄마 뱃속에 동생이 남자야? 여자야?”라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남자요”
그래 엄마도 네가 딸이니, 니 동생은 남자 였으면 좋겠다.
아들, 딸 다 키워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