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엄마의 스물네 번째 일기
세월에 닳는 것은 근력 다음으로 상상력이라던가. 우리는 상상할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상상하지 않는다. 다른 시선으로부터의 검열인지, 살아내느라 바닥난 여력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으며 감퇴하는 그저 자연스러운 결과인 걸까. 생각해 보지만, 현실과 상상을 가늠하는 일처럼 알 수가 없다.
상상이 풍부하면 현실감 없는 사람으로 쉽게 규정되는 사회에서, 다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먹힐 것을 두려워하는 사과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죽어 있는 사물에 감정을 이입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앎에 휩싸여 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앎의 무엇이, 얼마나 긴 시간을 거쳐 나를 감싸 버렸기에 나 아닌 존재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말 그대로 ‘일’이 되어버렸을까. 보통은 비슷한 궤도에 매몰된 탓이라 말하겠지만, 글쎄.
세상 모든 앎의 꼭짓점 하나 제대로 짚지 못할 만큼 나의 앎은 작고 보잘것없지만,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지나치게 커져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물여섯 엄마의 스물네 번째 일기 전문]
2001. 09. 01. (토)
오늘따라 아현이가 너무 예뻐 보인다.
“아현아? 너는 사과야!”
“아니야. 나는 사과 아니야”
“아니다. 너는 사과다.”
“아니다. 난 사과 아니다. 잉~그러면 엄마가 다 먹어버리잖아”
너무나 슬픈 표정을 짓는 아현이 때문에 박장대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