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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인포레스트 Nov 07. 2024

만 스물일곱의 단상

그 시절에 내가 없어서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하고 나서 일주일 뒤, 다른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OO시네마로 가 달라는 나의 말에 택시 기사 아저씨는 단박에 내가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을 눈치채시고는 물으셨다. “<서울의 봄> 봤어요?” 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똑같은 영화관을 찾고 이동수단 또한 택시인 건 변함이 없었지만 무슨 영화를 보러 가냐는 질문을 받은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의 영화를 더 보러 갔었고, 똑같이 택시를 이용했지만 내가 보는 영화가 무엇인지 물어봐 주는 아저씨는 없었다. 나는 기사 아저씨가 던지는 질문의 의도가 이상하게 눈앞에 선해지면서 속에서 자못 불쾌한 기운이 올라왔다. 그래도 표정은 아무렇지 않은 듯 “아, 그 영화는 저번 주에 봤고요, 오늘은 다른 영화 보러 가요”라며 평소 같은 말투로 답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그 북한군들이 내려와서 죽인 거를 같다가 엄한 사람 잘못한 거로 만들고, 안 그래요?”라며 익히 잘못 알려진 오해에 동의를 구하는 뉘앙스로 나에게 물으셨다. 불편했던 나의 예감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맞장구였다. 출발한 지 몇 분이나 되었다고 순간 가슴 한가운데가 압박을 당하는 듯 갑갑해지면서 창문을 내리고 싶은 충동이 꿈틀거렸다. 바람을 좀 마시면 좀 차분해지려나 싶었지만, 12월 한파에 쌩쌩 달리는 택시의 창을 내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말을 피할 도리가 없었던 나의 몸은 점점 열이 차오르고 있었다. 체크무늬 털 잠바 사이로 스며든 히터 바람의 후끈거림 때문인지 아니면 한 사람의 잘못된 믿음에 반발한 뜨거움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도로를 달리는 차의 클랙슨 소리에 개의치 않고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만큼은 뚜렷하게 느껴졌다. 8분이 채 되지 않는 거리가 이렇게 느껴질 수 없었다. 

  언짢은 표정은 서서히 굳어갔고 기사님은 한발 물러서는 듯 보였지만 평화로웠던 한 지역에서 벌어진 참극을 둘러싼 가혹하고 진절머리 나는 왜곡은 여전히 진실로 믿고 싶으신 것 같았다. “물론 그때 돌아가신 분들 안 됐지만, 그분이 아주 못한 거는 아니에요. 지금 봐봐요, 사람들 다 어렵고 경제도 완전 엉망이잖아. 그래도 80년대는 지금보다 경제도 좋았고 잘 살았다니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그 시절이 나았어. 올림픽 개최했지, 그때부터 나라가 성장했는데” 그의 말이 불편했어도 어른의 말씀을 씹는 것은 예의상 아닌 것 같아 말끝마다 “아”와 “네”를 짧고 떨떠름하게 뱉던 나는 결국 예감했던 충격을 피할 수 없었다. 인간답게 잘 먹고살 수 있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누구 하나 죽어도 괜찮다는 말인가. 아니, 한 명이 아니었지. 수천 명이었지. 그리고 인간답게 사는 것을 대가로 사람을 죽인다면 그건 인간다운 것 또한 아니게 된다.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니잖아’를 속으로 되뇌었지만 애석하게도 그 시절을 살아본 적 없는 나로서 뭐라 할 말이 없었고, 설령 아는 것이 있어도 아는 대로 말할 자신도 없었다. 설령 말한들 뭐가 달라질까. 체념한 채 차창 밖으로 펼쳐진 형산강 물줄기로 시선을 돌렸다. 얼굴 전체가 믹서기에 갈린 것 같이 뜯겨 인간도 고기도 아닌 형상으로 죽은 어떤 남자의 얼굴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어떻게든 좋은 점만 들춰서 만행을 덮으려는 말들과 어쩌다 SNS에서 본 사진, 그 형용될 수 없는 끔찍함이 서로 교차하며 형산강 위로 일렁였다.

  물결 위로 떨어지는 반사된 빛의 진동이 동공을 흔들었다. 상식 밖의 사건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저 “네”, “네”를 거듭할 수밖에 없던 내가 참 무력해 보였다. 믿음이란, 쇠와 철의 힘에 맞먹거나, 혹은 그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던가. 하여, 누군가에게 권위로 밀어붙이고 총과 칼을 대신한 제3의 무기로 활용되는 일이 가능했던 것이었나. 믿음이란 보이지 않고 심지어 어떤 믿음은 여러 죽음이 되풀이해도 버젓이 살아있는 것이어서 상처의 치유를 더디게 만들고 영원히 회복할 수 없게 만든다. 나는 채 1평 되지 않는 좁은 차 내부를 겨우 벗어났다. 서두르지 않는 모양새를 취하려 했지만 마음은 이미 저만치 밖으로 나와 있었다. 택시에서 빠져나와 입으로 더운 입김을 뱉으며 읊조렸다. ‘아직도 북한이 내려왔다고 믿는 분이 있구나’라고. 어째서 그런 믿음에 도달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 잘못된 믿음을 어째로 스스로 의심 한 번 한 적 없었을까. 간혹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 시절에 내가 살아있었다면, 그 시공간에 내가 존재했다면 칼로도 총으로도 뚫리지 않았던 오해와 왜곡의 탑을 쉬이 허물 수 있었을까. 아니, 실상은 이랬다고, 내가 살아봐서 안다고, 듣고 봐서 안다고.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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