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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Y Jun 08. 2024

순수한 집념에 가려진 이면

상상의 산물 속에 압축된 다양성

  처음에는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고, 두 번째는 우연찮게 그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으며, 세 번째는 일생에서 벌어진 절망적인 사건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가치관에 매료되었으며, 네 번째, 그는 마음속에 동경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하나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다섯 번째, 충격적인 어려움과 절망에도 불구하고 바늘을 쥔 손을 천장에 닿을 듯 높이 들어 다음 행동을 추진하는 그의 비정상적인 꿋꿋함에 놀란 나머지. 여섯 번째, 방향성을 잃은 삶의 의미에 대한 해묵은 의문이 위기에 대처하는 상대의 가치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일곱 번째는 상실과 절망도 부술 수 없는 한 사람의 정신의 기원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역경을 이겨내는 낙관적인 태도와 담대함이 한 사람의 모든 면모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당장은 아니지만 곧 보이지 않는 한계에 부딪치고 말 것이다. 


 여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남자를 취재하는 한 여성이 있다. '별'이라는 용어가 단어 사이에 쿡 박혀 한눈에 존재감을 드러나는 이름을 가진 사람. 스스로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하는 듯 비밀스러움을 간직한 이름은, 당연 호기심과 의구심을 자극하는 특이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여자는 이름 속 '별(Star)'을 유심히, 더 깊게 들여다보며 그가 남기고 간 선택과 누런 액체가 담긴 유리단지에 둥둥 떠 있는 사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한 깊은 고심에 빠진다. 수 천 마리의 생명을 바다에 건져 올리면서 그가 쌓으려고 했던 건 '질서'와 '위계'였고, 생명의 진화 과정에 절대적인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면 우리의 기원, 그 시작점을 발견하는 거대한 인류의 성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그는 믿어왔을 것이다. 장엄한 생명의 제일 밑바닥을 훑는 손바닥은 처음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꽃을 향했다. 손에 닿는 꽃잎과 이파리, 줄기는 '별'의 방에 도착하고는 벽면 구석구석을 잡다한 화려함으로 채워나갔다. 난잡하게 어질러져있는 꽃의 흔적들로 책상과 벽면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져 갈 만큼 방 하나는 어느새 꽃 박물관으로 탈바꿈되어 가고, 그의 표적은 다른 대상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원, 시작의 제일 밑바닥, 사다리의 맨 아래에 있을 법한 생명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위해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전 세계를 누비며 물고기를 채집하는 광적인 집착은 점점 연구실 천장에 닿을 듯 촘촘히 쌓인 유리단지로 변모했다. 전 세계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을 자랑하는 유리단지들은 한 자리에 모아서 질서 정연하게 진화의 순서가 매겨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평생 수집된 물고기에 관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는 영광의 순간도 눈앞에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한 남자를 취재하는 여자는 시선은 '물고기 수집광'과 '질서 정연한 생명의 세계를 구축하는 무모한 욕망', 한 남자에게 주어질 영광과 명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를 채우다 못한 범람하는 무엇. 그것은 이제 곧 하나의 세계가 무너지는 '박살' 그 자체의 처참한 현장이 펼쳐질 무대와 끔찍한 재앙이 무너트리고 간 자리에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바늘 쥔 손이었다.


  사체와 내장이 나뒹굴고 있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모든 것들이 망가진 세계에서 그는 눈물을 흘렸을까. 평범한 사람들 같으면 허망함, 허탈함, 허전함을 못 이겨 바로 그 자리에서 포기를 선언했을 것이다. 그도 모든 걸 접어 넣었을까. 아니, 방금 말한 그 바늘 쥔 손과 팔근육으로 부서진 세계 속에서 질서를 다시 쓰고 있었다. 가장 사소한 것이 가장 거대한 자연 앞에 무너졌는데도 물고기를 담을 유리병과, 선반, 에탄올을 구해달라는 요청을 할 심적 여유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이 한 편으로는 기이할 정도로 기적적으로 느껴진다. 이것이 '별'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놀라움과 의문투성이로 가득 채워진 가장 큰 이유다. '별'을 취재하는 그녀는 내면에서 샘솟는 '파괴되지 않는 신념'에 집착했다.

 

  '파괴되지 않는 신념'의 용기와 약한 나의 자신에게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힘, '별'에게 배울 점은 거기까지였다. 장애에도 굴하지 않는 기이한 낙천적 성향을 바탕으로 작고 사소한 존재에 관심을 가져왔던 '별'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그마한 존재들한테 생길 그 어떠한 결함과 부적합한 구석들을 소멸시키려는 목적으로 '우생학'의 오른편에 선다.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의 이면에는 또 다른 세계가 숨어있다. 그래서 한 없이 동경만 하는 태도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인간의 기원을 찾고자 했던 그의 소망은 되려 '질서', '위계', '순서', '수직'에 갇혀 인간의 작은 부족함마저도 수용하지 못하는 가혹한 역사를 만들었고, 복잡다단한 생명 진화의 진실의 미로를 차단하는 결과를 낳았다.


  스스로 생각한 관념과 질서는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믿는 순간, 실제와 상관없이 어디든 간에 나한테 만은 존재하는 존재가 돼버린다. '별'이 구분한 어류와 인간의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생명은 구분되고, 각자 정해진 자리가 있고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에 진화를 거쳐왔고 하는 일련의 사고와 경계들. 결국 이러한 관념들로 인해 물고기뿐만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도 피해를 겪었던 역사가 있다. 사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에 살지만 각자 가진 고유한 특성과 생김새가 너무 무궁무진하고 다양해서 '어류'라는 하나의 항목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질서를 찾기 위해 삶 전체를 물고기에 바쳤지만 그가 찾는 정해진 질서란 실질적으로 없는 것이었다. 데이비드가 만약 살아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형용할 수 없는 격분, 아마 그 이상일 것이다.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분노이지 않을까. 유리병에 담긴 물고기들이 모두 처참히 부서졌던 그날의 참상보다 잔혹한 사실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일 것이.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다면 그가 발견하고자 하는 절대적 질서는 애초에 있을 없는 일이 아닌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가져다준 것일까.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시간이 지날수록 수면 위로 윤곽을 드러내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줄 인간이 만들어낸 가상의 질서 속에 무리하게 다양성을 압축시키려는 위험성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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