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세계를 보지 못하는 육안의 한계
눈을 뜬 나는 눈뜬장님이 되어있었다.
몸에 붙어있던 기다란 것으로 허공을 훠이훠이 흔들어 재끼자
잠자던 노인의 얇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묵직한 숨결이 손끝에 닿았다.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몇 구의 어둑한 시체가 발에 밟히자
몸이 밟힌 게 분했는지 빠득빠득 이를 가는 후렴구에 맞춰
코를 고는 어떤 남자의 둔탁한 숨소리가 허공을 향해 우렁차게 퍼졌다.
번데기처럼 솜이불을 두른 어떤 몸이 꿀렁거리며 뒤척였다.
여기저기서 남녀가 합창하듯 뜻 모를 신음들이 일제히 터졌다.
빛이 없어서 할 일이 없던 안구(眼球)가 죽지 않음에 안심하자
새벽 바다를 둘러보기 위해 나갔던 어떤 이가
등 뒤로 일렁이는 별빛들을 한 아름 짊어진 채 들어왔다.
까마득한 수평선의 서늘함과 비릿한 바다가 콧속으로 선뜩하게 밀려오고
번뜩이며 떨어지는 별빛에 색도 선도 없던 형상이 드러난다.
그림자도 없이 조여오던 컴컴한 어둠은 서서히 맥이 풀리고
달빛을 따라 둥둥 떠다니는 어두운 안면들을 속속 피해
미닫이문을 열고 고개를 쭉 내밀어 새벽 바다를 한 입 베어 무니
내도록 몽유병에 뒤척이던 어둑한 안구
적정(寂靜)의 마루 위에서 고요히 눈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