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떠나기 직전

그 모든 직전의 나날과 안부들을 그려보며

by 김아현

떨어져 나간 시침 하나가 흰 타일 틈에 돌돌 말려

자동문 끝자락으로 채이고 끌려 튕겨 나가서는

곧장 끌어당겨 너를

이곳으로 푹

비어 가는 흰 자리의 곁에, 여기에


볕이 잘 드는 창가 아래에는 눈을 감은 식물인간

연 파랑의 긴 커튼의 설렁설렁한 몸짓 아래에는 정갈한 빈 침대보

그렇게까지 짙게 어슬렁거리는 무거운 회색의 압도가 아닌

오늘과 내일의 향연만으로도 충만한 흰색투성이


직전에 있는 모든 것은 긴 침묵의 나날


한 자리의 단어가 유언이 되어버린 직후

떠나기 직전의 당신을 만난 직후

떠나기 직전에 만나러 떠난 직후

떠나기 전날 내일 다시 올 거라고 한 직후

벌어진 직후에 소급하는 모든 직전

다시 올 거라고 했지


바삐 뛰어오는 두 다리에 눈을 돌리는 부은 시선들을 지나며

흠뻑 젖은 땀 비린내를 의아해하는 무뚝뚝한 불안감을 느끼며

기댈 곳이 필요치 않은 여유로운 등을 쏘아보는 염오의 눈빛을 마주하며

커피가 흐르는 입이 되고픈 부러운 속내를 아무렇지 않게 건너며

천장을 마주하지 않는 모든 수평의 시선을 향한 거센 질투를 감당하며

그 모든 직전의 나날과 안부들을 그려보며


그렇게 다시 올 줄 알았지


떠나기 직전에

keyword
이전 01화검은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