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국가의 톱날은 어떻게 망가지게 되었는가.
국가의 톱날인 공무원은 어떻게 무뎌지게 되었는가
2015년 10월 12일, 면사무소로 첫 출근을 했다. 당시 나의 팀장님은 정년 3개월을 남겨 둔 ‘말년’이셨다. 말년이셨던 팀장님은 오후가 되면 출장을 이유로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았다. 점심시간엔 여러 기관단체 사람들, 민원인들이 찾아왔다. 그런 분들과 점심에 식사를 하는 날이면 물 대신 소주가 채워졌고 오후 한참이 지나서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로 돌아왔다.
지자체에선 보통 봄철, 가을철 도로변에 풀베기 작업을 실시한다. 제초작업을 위해 기간제 노동자를 쓰는데 당시 채용된 분은 팀장님이 아는 동네 형이었다. 그분은 인상은 좋아 보였다. 하지만 풀베기 업무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팀장님께서도 편의를 봐주는 느낌이었고 풀을 베어낸 자리는 무언가 엉성했다.
행정이라는 거대한 조직에서 그런 일은 지극히 사소한 일이고 아무것도 아닌 문제였다. 하지만 큰 문제가 아님에도 조직은 발 빠르게 대응하고 개선했다. 과거에는 거의 없었던 복무 점검을 수시로 했다. 또 관내 출장을 처리하는 방식은 전산으로 시작과 종료를 기록하도록 바뀌었다.
기간제 노동자를 채용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내정하듯 채용했던 일자리들도 그럴 수가 없었다. 면접이 추가되었고, 공정한 면접을 위해 담당자가 아닌 다른 면접관들을 불렀다. 물론 이런 배경에는 공공기관 기간제 일자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것도 있다. 민간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최저임금이 오르기 시작해서 공공근로를 해도 수입이 제법 쏠쏠했다. 거기에 공공 일자리는 민간의 일자리보다 관리 감독도 느슨한 편인 것도 한몫했다. 이런 배경에서 기간제 노동자를 채용할 때도 합리적인 절차를 만들었다.
꼼꼼한 복무 점검이나 공정성을 기반으로 한 기간제 채용은 내부적 감시절차로써 시민들에게 행정이 이전보다 더 투명하고 공정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기반으로 조직은 문제들을 진단하고 건전한 방식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에 대한 끊임없는 피드백을 통해 시민들에게 더 나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처럼 보였다.
특히 오래된 관행도 비판의 목소리가 일자 빠르게 사라졌다. 대표적인 예로 ‘모시는 날’ 문화가 있다. 모시는 날은 하급자들이 순번을 정하고 사비를 모아 간부공무원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관행을 말한다. 상사를 모시는 날이기 때문에 외부에 있는 식당 중에서도 괜찮은 곳으로 가야 한다. 행여 점심 메뉴를 알아보지 못하고 구내식당으로 가게 되는 날이면 “너 덕에 오랜만에 구내식당에 가본다.”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모시는 날’은 공직의 대표적인 악습으로 지적되어 왔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상사 입장에서는 점심시간을 통해 부하 직원과 편하게 소통할 수 있다. 점심시간은 개인의 자유시간이기도 하지만 또 어느 정도 대화와 소통도 필요한 시간이다. 이런 이유와 간부공무원들의 편의를 위해 모시는 날은 없어지지 않고 공고히 유지되었다. 그랬던 모시던 날이라는 관습이 빠른 시간 내에 사라지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직원들의 인식의 변화다. ‘나의 휴식시간은 나의 것’이라는 젊은 직원들의 감수성이 커지면서 휴식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위직 직원들은 박봉에 비싼 식사를 자비로 부담하는 것도 불만이었다.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당사자들이 싫어했다. 언론에 보도되자 반대 여론의 목소리가 훨씬 커졌다. 그러자 조직은 변화의 목소리에 보폭을 맞췄다. 많은 사람들이 장점보다 단점이 더 크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공직 내부에서도 모시는 날은 과거보다 많이 사라졌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공직은 건전한 비판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문제가 있으면 합리적인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내가 10년을 공직에 있으면서 내린 결론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판에 대해 기민하게 대응하고 적절한 조치를 하는 척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오히려 폐쇄적이고 못 본 척하고 넘어가는 무책임한 경우가 더 많았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회피하다 보니 문제 해결 능력들은 점점 잃어가고 병폐들은 쌓여만 갔다. 겉에 보이는 문제를 처리하는데 치중했고 근본적인 원인은 덮어 두었다.
공직에서는 각종 사회적 문제가 생길 때마다 대책회의가 늘어났다. 대책회의 추진을 위한 보고서는 늘어나지만 보고서는 늘 현장의 언어가 아닌 문서의 언어로 대체되었다. 보고서에 경도된 관료들은 언제나 문제의 원인과 해답을 보고서에서 찾았다. 지역경제는 침체되는 상황인데 ‘지역경제 활성화 기대’라는 희망적인 문구는 그럴듯한 수사는 침울한 현실에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처방적인 해결 방안은 요원했다.
공직은 그곳에 있는 사람에 대한 배려도 부족했다. 월급을 주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관계지만 그래도 사람은 미래라는 말처럼 조직의 미래는 인재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기본적인 배려가 결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공직을 떠나는 사람들은 많아지지만 들어오려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자연스럽게 남은 사람들은 더 많은 일을 힘들게 하게 된다. 조직 구성원이 불편을 느끼고, 개선해야 할 문제가 있으면 스스로 고치면 되지만 그대로 둔다. 불합리함을 모두가 알고 있고 개선의 목소리가 나와도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결정권자가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전까지 불합리한 관행은 유지된다.
물론 전국에 있는 120만 공무원 중에서 나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고 곡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당초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사소한 이유라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의 원인이 그저 10년 정도 일해서 이제 겨우 공직을 조금 이해하는 사람의 감상 정도에 그칠 문제였다면 이다지도 오래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조직 안에 사람이었지만 한 번도 조직 내부에 뿌리내린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직 내부에 있는 사람이지만 위치는 외부인에 가까웠고 정체성은 공직 외부에 있었다. 공무원으로서의 정체성 또한 삶의 궤적과 비슷했다.
나는 남들 다 가는 대학의 문턱도 밟지 못했고 검정고시가 최종학력이었다. 학벌도 없는데 열심히 하지도 않고 불만만 많은 직원이다. 거기에 나의 부모님이 지역 유지도 아니었다. 내가 요직에 갈 수도 있는 방법은 없었고 승진을 하지 못했던 객관적인 이유도 안다. 그렇게 남들은 휴직을 해도 4~5년이면 승진을 하는데 나는 8급 공무원으로만 6년 반을 일했다. 그것도 시청에서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억울하게 생각하지는 않으려고 했다. 나의 기분 나쁜 것과는 별개로 나름의 이유가 있긴 하니까. 공직에서 나 같은 사람을 내치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