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하

국가의 톱날인 공무원은 어떻게 녹이 슬고 무뎌지게 되었는가

by 유해길

하지만 내가 공직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은 나의 승진이 아니었다. 가령 비가 많이 왔다는 이유로 주말이나 연휴, 새벽에도 상관없이 직원의 4분의 1, 절반 가까이를 전부 출근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이해할 수 있는 일인가?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것일까? 나는 불합리하고 문제가 많다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비정상인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비상근무’니까 대체로 납득하고 넘어간다.


악성민원들이 인터넷에 좌표를 찍고 욕을 하고 사무실에 와서 욕을 하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물건들을 부순다. 조직은 사람들을 위해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폭언, 욕설, 물리적 폭력을 행하는 순간들을 수 없이 많이 지켜봤다. 하지만 10년 동안 조직은 단 한 번도 그들을 형사고소한 적이 없었고 악성민원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회의나 교육을 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직원들의 친절과 청렴교육에만 열을 올린다. 공직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병들고 지쳐가는 것 같은데 조직은 평온하다. 대체 왜 공직은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운영이 되는 것일까. 왜 조직은 쓸데없는 가짜노동을 끊임없이 양산하고, 직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조차 없게 되었을까. 나의 의문은 사실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해소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뉴스를 통해 본 세상은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결국 나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지자체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였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나 해결 방법의 모색은 전혀 없었고, 그저 현상에만 주목했다.


사실 공무원이 시키는 것만 잘하면 되지 의문을 가지는가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의문을 가질수록 점점 공직과 멀어졌다. 그렇게 10년이 있어도 동화되지 못했던 공직에 부적응했던 고교중퇴자는 굴러 노동조합까지 가게 되었다. 노동조합까지 가서 보니 이전에는 조직의 ‘변두리’에 머물렀던 느낌인데 이제는 아예 조직의 반대편으로 가는 열차를 타버린 느낌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에 와서 보니 신기한 일이 생겼다. 내가 가진 의문들이 조금씩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가까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보이기 시작했다. 멀어지면 희미해져 갈 줄 알았는데 또렷해졌다. 객관적으로 공직을 볼 수 있었고 더 큰 틀에서 볼 수 있었다. 노동조합은 나에게 멀지만 세상을 가깝게 볼 수 있는 망원경이 되어 주었다. 망원경은 멀리 있는 문제들도 나의 일상에 가지고 와주었다.


그리고 과거에 했던 나의 업무 경험은 현미경이 되어주었다. 나는 업무의 대부분을 민원과 관련된 일을 했다. 노점상 단속 현장에서 욕을 먹었고, 토지 보상 업무를 하며 토지소유자와 협의하고 때로는 행정심판, 행정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국유재산 사용허가 같은 인허가 업무를 내주며 몇 년간 해결되지 않는 민원과 다투기도 했고 팬데믹 시기에는 홀로 330개가 넘는 체육시설업소에 지원금을 주었다. 이것 외에도 정말 다양한 일들을 했는데 공무원 조직에서 나의 여정은 소설책 『연금술사』를 생각나게 했다. 내가 겪은 일들이, 공직에 있었던 모든 순간이 지금 쓰는 이 글을 위한 여정이었나 싶었는지도 모른다. 조직의 변두리, 비판적인 성격, 현장에서의 경험, 노동조합 활동까지. 이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나는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변두리에 있었기에 내부인이면서 동시에 외부인이었고,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기에 혼자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현장의 경험은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세상의 이면을 보여주었고, 노동조합 활동은 내 생각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렇게 나는 10년 동안 일했고 말하고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말을 처음 시작한 아기가 거침없고 끊임없이 말하듯 하고 많은 말들이 많아졌다. 나는 보았으므로 알고,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할 생각이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지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의 이야기들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겪어보거나 들어보았을 이야기들이다. 나는 ‘외압’이 공직의 판단을 흔드는 위험한 순간을 여러 번 보았다. 법적으로 허가가 나갈 수 없는 사안이 반복된 민원과 정치적 압박을 타고 다시 책상 위에 올라온다. 담당자는 불가를 고수하지만, 지자체장의 뜻이 개입하면 담당이 바뀌고, 새 담당은 허가를 내준다. 시간이 지나 감사가 시작되면 지시는 흔적으로 남지 않고, 도장 찍은 실무자의 책임만 또렷하게 남는다. 그는 문책되고, 한직으로 밀려난다. 남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순응하는 것이 덜 다친다는 것을 배운다. 반복된 학습은 다음 세대에게 전수되고 날카로워야 할 공무원이라는 톱날이 조금씩 무뎌진다.


민원은 원래 정책을 조정하는 지렛대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민원은 정책의 핸들을 통째로 돌리고 악성민원이 되기도 한다. 목소리가 큰 소수는 자주 침묵하는 다수를 압도한다. 현장은 거센 목소리에 흔들리고, 보고서는 흔들림을 정당화한다.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은 묵살되고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다쳤다. 공무원은 ‘영혼’을 가지고 일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판단은 사치가 되고, 무사유는 일상이 된다. 공무원이라는 조직의 톱날이 무뎌지는 순간이다. 거기에 더해 공무원에 대한 처우도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처우도 나빠지고 보호장치도 없어지고 서서히 녹슬기 시작한다. 공무원이라는 조직의 톱날이 무뎌지고 녹슬게 되면 시민들은 온전한 행정서비스를 받기가 힘들어진다. 결국 피해는 시민들의 몫이다. 녹이 슬어가는 속도는 점점 가속화된다.


구한말 황현은 망해가는 나라를 보며 “가을밤 책을 덮으며 지식인 구실하기 어렵다”는 절명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00년을 지탱했던 왕조가 망해가는데 책임지는 선비 하나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한탄하며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박은식 같은 사람도 있었다. 그는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사람이고 역사학자로써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를 기록한 사람이다. 공직을 떠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그들은 그들만의 아픈 이야기를 한다. 아픈 이야기를 반추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 과정이 없다면 결국 조직은 수많은 문제들에 잠식되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그들의 이야기에 더해 나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떠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떠나지 않고 버티고 남아서 말하는 사람도 한 명쯤은 있어야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러한 생각으로 글을 썼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1화프롤로그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