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민원 잔혹사
글을 쓰기에 앞서 용어를 분명히 밝힌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는 지난 2018년 특별민원 대응 메뉴얼을 만들었다. 특이민원이라는 용어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있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악성, 고질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아닌 일반 민원과 달리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특별민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이들은 특이 민원도 특별민원도 아니다. 그저 악성민원이다. 그들은 정당한 공무수행을 방해하고 악의적인 행동으로 공무원을 다치게 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아 간다. Speacial이 아닌 Evil이 명확하므로 악성민원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고 글에서는 전부 악성민원으로 표기하겠다.
2024년 초, 김포에서 도로 관리업무를 담당하던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원인은 악성민원이었다. 포트홀을 보수하기 위한 공사로 차량 정체가 빚어지자 민원이 반복적으로 제기되었다. 특히 한 민원인은 온라인 카페에 담당 직원의 신상을 공개했고, 그로 인해 그는 소위 말하는 ‘좌표’가 찍혀 지속적인 악플 세례를 받았다. 결국 담당 직원은 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악성민원과 관련한 이야기들은 이 사건 이전부터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김포시 공무원 사건은 그간 누적되어 있던 악성민원 문제의 기폭제가 되었다. 많은 국민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고,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었다. 정부, 정치권, 언론, 노조 등 각계각층은 저마다 분주히 움직였다. 공무원 내부에서도 큰 반향이 일었다. 함께 일했던 많은 동료들이 애도했고, 전국에서 일하는 동료들도 함께 추모했다.
노조에서도 악성민원 문제를 깊이 고민했다. 악성민원을 규탄하고, 먼저 떠나간 이름 모를 동료들을 위한 추모행사도 준비했다. 2024년 4월, 나는 집회에서 현장 발언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지부장이 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노조에서는 나 같은 ‘뉴비’를 꽤 큰 무대에 올린 셈이다. 두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 또한 도로를 담당하는 부서에 있었고 그분과 나도 같은 나이였다. 대한민국 북서쪽 끝에 있던 그와 남동쪽 제일 아래에 있던 나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같은 병을 앓다 보니 서로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지만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또렷이 느껴졌다.
<2024. 4. 29. 서울정부청사 앞 집회. 이름 모르게 죽어간 동료들의 영정 사진>
나는 현장 발언을 준비하기 전, 고인과 같은 업무를 하는 다른 팀 직원과 인터뷰를 했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동료라 흔쾌히 응해주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악성민원은 피할 수도 없고 끝을 낼 수도 없다. 죽거나 그만두는 것 외에 답이 없다.” 그 말은 과장도 아니고 수사(修辭)를 위한 말도 아니었다. 그저 참담한 현실을 담담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그 말은 나와 내 동료들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나타내는 가장 적합한 문장이었다. 나는 그 외에도 그들이 현장에서 겪는 일들과 감정들을 기록해 두었다.
집회는 서울 정부청사 앞 대로변에서 진행되었다. 나는 그 인터뷰했던 내용을 갈무리해 현장 발언을 했다. 나의 사무실에서는 고인과 같은 도로 보수 업무를 하는 직원은 일하다가 “너를 죽이겠다”는 협박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했다. 또 어떤 민원은 아이가 길을 가다 도로가 파인 곳에 발이 빠져 발을 삐었다며 찾아왔다. 아이 엄마가 시청으로 와서 항의하자, 직원은 법적인 절차를 안내했다. 하지만 엄마는 법적인 절차는 필요 없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했다. 법적인 근거가 없어서 그렇게 해줄 수 없다고 답변하자 불만족하고 돌아간 이후 아이의 부모는 지속적으로 시청에 전화를 했다. 온 동네방네 소문을 다 낸다고도 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시의원에게 찾아가고 시장실에 찾아간다고 했다. 지쳤던 그 직원은 나중에는 “그냥 찾아가서 알아서 해라”라고 했다고 한다. 김포에서 일했던 그 직원과 대한민국의 정반대 편에서 일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도 같았다.
나는 글을 쓰거나 말할 때 반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장 발언에서 “죽거나 그만두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그게 일선의 공무원들이 처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집회는 끝났고 정부는 의외로 발 빠르게 악성민원과 관련한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좌표 찍기’의 희생양이 되지 않게 공공기관 홈페이지에서 직원들의 이름을 지우고, 기관 내 사무실 조직도에도 직원들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지 않도록 권고했다. 그 외에도 공무원을 보호할 수 있을 만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나는 당시 이런 조치들이 현장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사실 정부가 한 대책은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행정과 시민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만 하나 더 만드는 것은 아닐까, 서로를 멀어지게 하고 불신하게 하는 장치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역시나 우려했던 대로,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현장에서 체감하기에 바뀐 것은 거의 없다. 복지 담당 공무원이 주거환경 개선사업 신청서를 접수하기 위해 기초생활수급자의 자택을 방문했다가, 이유 없이 민원인에게 폭행당해 전치 6주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렸고. 저혈당이 의심되어 현장에 출동해 구조활동을 하던 구급대원에게 욕설을 하고 침을 뱉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현장에서 폭행과 폭언은 여전히 일상적이며, 이유도 없다.
<하동군 사회복지직 공무원 폭행사건 관련 집회 사진. 담당 직원은 등, 허리 골절 등으로 전치 6주의 부상을 입었다.>
흥부전에서 놀부는 흥부에게 밥을 주겠다며 밥풀이 묻은 밥주걱으로 뺨을 때리고 그것을 먹으라고 한다. 자신의 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찾아온 공무원과, 저혈당으로 몸이 좋지 않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출동한 소방대원은 그런 최소한의 이유도 없이 맞았다. 그럼 대체 악성민원인들은 왜 생겨났을까. 사람들은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악하게 되었을까. 개인적 특성에 기인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악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면 악성민원은 몇몇 특이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현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성민원에 대한 해결책을 말하기 전에 먼저 악성민원이 무엇이고 왜 생겨났는지부터 고민해 보았다. 원인을 알아야 처방적인 대안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