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 하 (악성민원 이야기)

by 유해길

악성민원에 대한 명확한 법률적 정의는 없지만 보통 다음과 같은 경우를 말한다. ① 민원처리에 대한 불만으로 지속적·반복적으로 제기되거나 ② 민원인이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고집하거나 ③ 적법절차를 무시하고 직·간접적으로 위법·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④ 공직자에 대한 폭언·폭행 등을 통해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거나 ⑤ 일반 사회통념상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하거나 ⑥ 공직자를 대상으로 무고하거나 징계·형사처분·손해배상 등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거나 ⑦ 민원인의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해 과다한 행정력 및 예산을 낭비하게 만들어 다른 민원인에게 피해를 발생시키는 등의 요소가 구성요소로 언급된다.
[공무원 악성민원 대책 마련 국회토론회(2023.11.6.) 자료 참조]


그렇다면 악성민원은 대체 언제, 어떻게 발생하게 된 걸까? 과거에는 악성민원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악성민원은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사회적 문제이다. 과거 우리 사회는 행정에 대한 수요가 적었고 국가 전체에서 행정이 미치는 영향도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그러다 1990년대부터 문민정부가 들어오게 되고, 한국 사회는 사회경제적으로 선진국으로 점점 진입하게 되었다. 행정이 커지기 시작하자 시민들의 행정에 대한 수요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행정은 시민들과 더 밀접해졌고, 특히 각종 보조금과 바우처 지급 같은 사회복지의 확대는 시민들이 즉각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또한 정부는 사회복지뿐만 아니라 주민등록, 세금, 민생경제, 사회기반시설 등 시민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 급증하는 민원을 처리하기 위한 제도적 준비를 했다. 그 결과 1993년 12월 「행정규제 및 민원사무 기본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그간 대통령령의 형식으로 민원사무 처리를 규율해 왔던 ‘민원사무처리규정’을 법률로 대치되었다는 데 있다.
(한국행정연구원, 「행정규제 및 민원사무 기본법의 의의와 문제점」 참고) 이후 1997년 8월 「민원사무처리에 관한 법률」과 「행정규제 기본법」으로 나뉘어 민원사무 처리를 더 세밀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또 1992년 청주시는 전국 최초로 정보공개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는 정보공개제도의 도입에 중요한 사건이자 전환점이 되었고, 국회는 1996년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법령의 제정 외에도 2002년 6월, 헌법재판소는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불온통신의 단속)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는데, 이는 정부에 의한 인터넷 검열을 제약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결정례였다. 그 이전에는 미풍양속이나 불온 내용에 대해 정부가 단속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가 컸다.
2000년대 들어 우리 사회는 인터넷이 발달하고 정보화 사회에 진입했다. 정보화 시대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이라는 기술적 발전과 더불어 「민원처리법」, 「정보공개법」 같은 제도적 발전이 병행됐기 때문에 안정적인 정보화 사회에 진입할 수 있었다.


정보화 사회에서 만들어진 온라인 공간은 물리적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허물었다. 시민들은 네티즌이 되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론을 생산했다. 신문이나 방송 같은 기존 매체의 소비자였던 시민들이 네티즌으로 탈바꿈하며 프로슈머가 되었다. 프로슈머가 된 시민들은 스스로 사회적 이슈를 만들었다. 미군 장갑차 사고로 희생된 두 여중생의 사망은 월드컵이라는 초대형 이슈에 묻힐 뻔했지만, 몇 달 뒤 해당 내용이 온라인을 통해 알려지며 거대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전통적 지지 기반이 약해 언더독으로 불리던 대선 후보는 인터넷 팬카페를 통해 선거운동을 전략적으로 활용했고, 그는 극적으로 승리했다. 이후 온라인은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을 좌우하는 중요한 플랫폼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한 최초의 순간이다. 인터넷은 2000년대 초반 이후부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사회적 문제와 관련된 판도라의 상자가 되었다. 사회가 다원화되어 가며 다양성이 존중되는 등 여러 가지 긍정적인 모습이 나타났다.

인터넷은 언더독인 대선 후보를 당선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보통신의 발달도 그림자는 짙었다. 인터넷의 장점이라는 빛이 큰 만큼 인터넷의 문제라는 그림자도 짙었다. 먼저, 인터넷을 활용한 각종 범죄는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었고, 개인정보 침해로 인한 피해도 급증하면서 정보보호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내용들도 온라인에 빠르게 유포되었다. 과거부터 신문이나 방송 같은 기성 매체에도 오보는 있었고, 때로는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서 편향된 메시지가 전달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기존 매체에는 최소한의 검증 장치가 있었다.

반면 온라인에서는 검증보다 속도가 앞섰고, 익명성과 확산성이 결합하면서 한 사람을 겨냥한 공격이 손쉽게 ‘동원’되었다. 여기서부터 민원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민원은 더 이상 한 사람이 제출하는 문서가 아니라, 특정인을 향해 몰려드는 댓글과 전화, 공유와 조롱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좌표는 그 변질을 가능하게 만든 간단한 장치였다.


간단한 장치의 효과는 컸다. 강하게 압박할수록 공무원들은 숨 가쁘게 움직이고 대처했다. 공무원들이 빠르게 대처하니 더 강하게 압박했다. 숨이 차올라 숨 쉬기가 힘들어지지만 압박의 강도는 더해갔다. 특히 2010년대 즈음부터는 온라인을 통한 지자체 단위 민원이 폭주했다. 또 물리적 공간도 없애버린 온라인 공간에서 일반 시민은 청와대나 정부부처에도 직접 민원을 제기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민원은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공무원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었다. 한 사람이 던진 불만은 온라인에서 군중의 분노로 증폭되어 누군가를 다치게 했지만, 역설적으로 이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식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학습했다. 공무원 사회에 걷잡을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인터넷은 완벽한 판도라의 상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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