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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글 Nov 10. 2018

정이란 온도가 나를 덥게 한다

늦은 점심을 간단히 먹고자 브리또를 산다. 백팩 오른쪽 주머니에는 목을 축이기 위한 음료도 준비됐다. 대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사람이 적은 벤치에 자리를 잡는다. 브리또를 한입 베어 물고 주위를 살핀다. 적당히 내리쬐는 햇살과 초록나무에서 살아 숨 쉬는 기분을 만끽한다.
 다시 브리또 한입 베어 문다. 한껏 부풀어 오른 볼이 힘겨워 바삐 삼켜내자 이번엔 목구멍이 말썽이다. 라면에 면이 국물을 모두 빨아들여 퍽퍽함을 느끼게 하는 것처럼 목구멍이 퍽퍽하다. 그래서 준비해둔 음료로 막혀있던 목을 시원하게 뚫는다.
 이런 브리또와 음료를 다 먹자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어머님이 옆에 앉는다. 본인은 이 시간에 운동삼아 나온다고, 지금 자신이 자주 앉는 자리를 누가 앉아 버렸다며 옆에 앉으셨다 말하신다. 어머님이 다시 말을 건네신다.
 
 “사는 게 참 어려워, 내가 잘 살 때는 이거 해달라 뭐 해달라 찾아온 사람들이 지금은 내가 못 산다고 오지도 안 해”
 
 갑작스레 훅 들어온 말이다. 하지만 덤덤하게 어머니의 말을 듣는다.
 아마도 마음껏 토로하지 못한 언어가 화산처럼 갑작스레 터져나온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가족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서는 남이더라, 그러니 괜히 막 주고 그러면 안돼”
 “복지관이 크고 좋아서 사람도 많고 참 재미나”
 “딛고 일어서다 잘못 디뎌서 넘어졌어. 그래서 운동을 해야 해. 무릎이 안 좋거든”
 “몸을 안 쓸수록 더 몸이 아파오더라고”
 
 그리고도 많은 언어를 뱉으셨다.
 어머니는 “내가 참 쓸데없이 말을 많이 했네, 젊은 친구가 인상도 좋고 남에게 안 하는 말도 술술 나오게 하는구먼”

어머니는 운동을 마치시고 이곳에 앉아 꼭 마신다는 탄산음료를 건네신다. 어머님이 손에 꼭 쥐고 있던 음료는 참 미지근하다. 하지만 이게 어머님의 정이란 온도란 걸 느낀다. 받아 든 미지근한 음료를 한 번, 두 번 쥐어본다. 어머니의 정에 내 정을 더해 보고 싶었다.
 
 “어머니 감사해요! 정말 잘 마실게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시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신다. 빨간색 모자에 파란색 계열의 상하의, 그리고 약간은 칙칙한 보라색 운동화. 덤덤한 걸음은 참 무거워 보인다. 아마 아직도 쌓아둔 언어가 쉽게 뱉어지지 않았을까. 모두가 잘 산다는 건 불가능한 것일까, 모두가 그럭저럭 살아도 충분히 먹고 살만 할 수는 없을까
 
 어머니의 정이란 온도가 자꾸만 나를 더워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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