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_ 박준
언제부터인지 아무 이유 없이 슬픔이 몰아칠 때가 있다
마치 세상 모든 슬픔을 겪어 본 사람처럼 전부 받아낸다
그럼 몸과 마음을 조각내어 슬픈 이유들을 찾아본다
조각이 날수록 도리어 나 자신만 작아지고 작아져서
나를 잠시 상실하고, 다시 내가 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을 보내다 문득 시집을 읽었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박준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생략)
그의 시에서 위안을 받는다
나를 작게 만드는 슬픔도 자랑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어떻게 슬픔이 위안과 자랑이 되는 거냐 묻는다면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슬픔들이 쌓여
타인의 슬픔까지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에
이만하면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