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웅글 May 20. 2020

수염을 가진 남자가 들어왔다


할리스 카페에서 라이트룸 클래스 진행을 위해 음료를 기다리고 있다. 문이 열리고 깎이지 않은 수염을 가진 남자가 들어왔다. 정확하지 않은 보폭과 걸을 때마다 들썩이는 어깨, 몸은 발목의 기울기에 따라 높낮이가 달라 보였다. 신발은 그런 굽은 발목을 받치느라 온전히 서있질 못했다

_

그런 남자가 음료를 시킨다. 남자는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곧바로 디저트를 바라본다. 세상 모든 게 궁금한지 이것저것 묻기 시작한다. '이건 얼마나 있다 먹을 수 있어요?', '이건 커피 타 먹는 건가요?', '이건 엄마가 좋아하겠다', '빵도 엄마가 좋아하는 데 사갈까?', '저도 커피, 그 콜드브루로 주세요.', '저 시원 거 타먹는 걸로 주세요', '어 이거 예쁘다' 등등

_

직원은 모든 질문에 답을 하진 않았지만 내가 있어서인지 원래 그런 건지 친절히 응했다. 그렇지만 '제 음료 됐어요?'라는 질문 공세가 이어졌고 '아니요, 아직이요. 앉아 계시면 진동벨로 알려드릴게요'라며 상기됐지만 옅은 목소리로 답했다

_

남자는 가지고 있던 짐을 들어 음료 대기석인 내 옆자리로 왔다. 느린 걸음처럼 말도 느린 그는 아까 전에 구매한 상품을 들어 보인다. 이리저리 상품을 구경하며 피식 웃더니 다시 쇼핑백에 넣는다

_

그가 내게 묻는다. '여기서 음료 시켜서 드세요?' 나는 별 감흥 없이 '네네'라고만 답했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진 않았다

_

아마 추측하건 데 오늘 남자의 쇼핑은 오랜만에 부담 없이 즐긴 쇼핑인 것 같다. 그가 꺼낸 카드는 이번 코로나 사태로 받게 된 재난지원금인 것 같아서다. 아무 부담 없이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고르고 자신도 마시고 싶은 걸 마신 것 같다. 오랜만의 자유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_

나는 그런 남자를 바라보며 걷는 모습부터 어머니를 위한 마음까지 한순간 너무 많은 감정을 느껴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맥북 프로 침수와 오토바이로 돌아가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