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첫째 주가 되고 기온은 가장 여름에 어울리는 온도로 변해간다. 아침부터 날이 선 칼날 같은 햇빛이 따갑게 내리쬐고 밝기의 강도만큼 낮의 기온에는 하한선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날씨를 피해 오전부터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다. 경계심이 가득한 자리에 앉아 햇빛과의 거리를 떨어트리고 시원한 자리에서의 내 할 일을 한다.
에어컨은 그날의 날씨만큼 강하고 시원스럽게 바람을 뿜어낸다. 내가 앉은 자리는 에어컨 바람을 직접적으로 받진 않고 한 칸 옆자리다.
바람은 빛처럼 한 방향으로 직진한다. 다소 고리타분한 원칙쟁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빛과 바람은 말끔하고 정직하다.
하지만 때때로 정직한 방향도 어딘가로 걸리거나 부딪친 경우에는 밖에서 올곧게 행동한 사람이 집에서는 숨겨둔 난잡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쉽게 달라져 버린다.
카페 책상은 내 가슴보다 조금 낮고 팔꿈치를 올리면 책을 읽는 눈높이가 알맞다. 한 손에는 책을 45도 정도 기울고 남은 손은 책상에 팔꿈치를 붙이고 천장 위를 향한다.
그럼 목적 없이 자기만의 배회의 시간을 갖는다. 탐사선처럼 굴곡진 피부 표면을 탐사하거나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한 함께라서 서로를 모르는 손가락 하나하나를 만져본다. 공동체적이면서 개별성을 가져서 이들의 감각들도 새삼 다르게 느껴지곤 한다.
그 순간 에어컨 바람이 옆의 책상, 사람, 의자에 부딪치더니 내 쪽을 향해 불어온다. 처음에는 적은 양이 부딪히고 그다음에는 더 강하게 부딪쳐 내게로 불어왔다.
그러자 오른 편의 페이지가 힘없이 펄럭이며 바람이 부딪치는 양에 맞춰 완전히 왼편으로 넘어가려 했다. 평평하게 나풀거리던 페이지는 때로는 곡선으로 웨이브를 타거나 휘기까지 했다. 춤을 추는 것처럼.
하지만 왼편에는 책의 양이 많아서 섣불리 넘겨지지 않고 넘어갔다 다시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모습은 살아있는 누군가의 고민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펄럭이는 페이지에는 시선을 따라 작가의 예견된 이야기가 쓰여있다. 나는 그것을 어서 빨리 읽기보다 바람에 움직이는 페이지를 유심히 바라보며 넘어가지 않은 채로 춤을 추는 모습에 푹 빠져 있었다.
얼마나 많은 말들이 왼편으로 넘어갔는지 새로운 문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나. 이건 배부른 사람이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제스처일까, 아니면 한정된 저장용량 탓에 한 개의 파일을 들여보내지 못하는 경고 메시지일까.
나는 그 순간을 관찰하고 고민하다가 이게 철학일까, 잡념일까, 아무것도 알 수 없어서 바람에 몸을 맡긴 종이를 떠올리며 가볍게 일렁이는 꽃을 닮았다고만 반복해 생각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