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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Jun 26. 2019

일요일엔 기차도 쉬어! 히치하이킹, 다시 폴리냐뇨

2019.06.23


어제 우연히 폴리냐뇨 올드타운 내에 정말 예쁜 집을 싸게 구해서 오늘은 폴리냐뇨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 예쁜 올드타운 내에 묵게 된다니 가기 전부터 너무 설렜다. 그래서 아침 10시 체크아웃을 위해 9시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나가면서 기차가 언제 오는지 확인했는데, 망했다. 어디선가 일부 기차는 일요일에 운행 안한단 얘길 들은것 같은데 그 불운의 일부 기차가 투리에서 나가는 기차였던 거다. 게다가 버스는 오후 5시에나 있다. 이 더운 날씨에 갈 곳도 없고, 예약한 숙소도 즐기고 싶고, 폴리냐뇨의 바다에서 수영도 해야 하는데 지금 장난해...

구글 맵에서는 택시로 20유로 정도면 갈 수 있다고 해서 택시 회사에도 연락했는데 80유로를 달란다. 체념하고 4시에 바리가는 버스라도 타려고 버스 정류장을 찾아다녔는데 지도상 위치에 없어서, 그 근처의 신문가게에 물어봤더니 온 동네 심심한 아저씨들이 다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영어 단어와 이탈리아어를 마구 섞어서 7명 가량의 이탈리아 아저씨들이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는데(물론 스윗한 그들은 도움을 주기 위해 서로 토론하고 우리에게 물어보는 등의 대화를 한 거지만 이탈리아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와중에 갑자기 저 멀리서 이탈리아 아저씨8의 등장. 아저씨들이 엄청 반가워하면서 아저씨8을 불러 세워 마구 손가락질 했다. 호응하듯 그에게 영어 하냐고 물어봤더니 “i’m english”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초쯤 무슨 소리지? 했다가 영국에서 온 이민자라는걸 깨달았다. 아저씨의 등장 전후로 상황 자체는 크게 달라진게 없지만-나머지 아저씨 7명은 여전히 자기들끼리 언성을 높이며 토론하거나 우리에게 몇몇 이탈리아어 단어와 영어 단어를 마구 내던졌다. 한분은 이탈리아어로 ‘나는 -에 가고 싶어요’를 가르치겠다고 내게 얼굴을 바짝 대고 같은 문장을 띄엄띄엄 큰 소리로 반복했다- 결국 이렇게 해서는 답이 나오질 않는단 걸 깨달은 아저씨들이 곧 우리를 아저씨 8에게 온전히 맡기고 놔줬다.

스윗한 아저씨8 올리버는 최선을 다해 우리를 도와주려 하면서 정말 끝없이 말을 이어나갔는데(정말 끝없이), 덕분에 그에 대한 모든걸 알게 된 데다 내 이탈리아어 발음을 교정해준다든지 내 영어가 환상적이라든지 그런데 이건 고쳐야 한다든지 하기도 했다. 물론 완벽한 옥스퍼드 발음으로...

알고 보니 이탈리아 남부 소도시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다. 밖으로 나갈 일이 없을 정도로 소도시 내 사회가 잘 구성되어있기도 하고, 다들 차를 타고 다녀 대중교통은 사실상 면허를 따지 못하는 나이의 학생들만 이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한번도 이용해본 적이 없다는 올리버. 보통은 자기 남자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니는데, 오늘은 남자친구가 출장을 떠나 우릴 정말 데려다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득 담아 말했다. 결국 올리버의 정보와 우리가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들을 조합했을 때 6시 전에 폴리냐뇨에 도착할 확률은 전무. 20km거리일 뿐인데.


그래서 결국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나도 히치하이킹은 꽤 오랜만이라 약간 떨리지만, 영이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더 걱정됐을 거다. 히치하이킹은 운만 좋으면 한번에 최단 시간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비효율과 생고생이기 때문에 처음 해보는 영이가 더 걱정됐다. 마음의 준비를 위해 카페에서 비건 쿠키와 카페 프레도(엄청 단 커피 슬러시같은 이탈리아 카페의 대표메뉴. 식물성 크림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항상 그런건진 잘 모르겠다.)를 먹고 폴리냐뇨로 이어지는 국도의 시작점으로 떠났다. 박스를 구하지 못해 급한대로 내 스페인어 책의 빈 페이지에 polignano를 최대한 크게 적어 들고 갔는데, 역시나 스윗한 이탈리안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4번째로 지나가던 차가 바로 멈췄고, 심지어 목적지로 바로 가는 노부부의 차였다. 대부분 히치하이킹 호스트는 혼자 있는 남자 운전자라 계속 경계를 늦춰선 안되는데, 이정도로 운이 좋았던건 처음이다. 바로 멈춘데다, 목적지로 바로 가고, 게다가 인상좋은 노부부라니. 차에 탔고, 매우 짧은 이탈리아어로 열심히 말을 했는데 결국 서로 약간 포기하고 조용히 창 밖 풍경을 구경하며 갔다. 사실 이럴 때가 제일 편하다. 말이 너무 잘 통하면 너무 큰 감정노동을 요한다.

그렇게 금방 폴리냐뇨에 도착, 숙소를 찾아갔다. 또 웬걸, 숙소가 너무 좋다. 이번엔 방 한칸짜리 4층 집이다. 올드타운 광장 바로 옆 건물로 위치도 완벽하다. 1층은 쇼파와 화장실이 있는 응접실, 2층은 침실, 3층은 부엌과 화장실, 4층은 루프탑 테라스다. 심지어 작은 테라스는 모든 층에 하나씩 꼭 있다. 이것도 이탈리아의 특성인데, 테라스나 광장 없인 못산다. 모든 집엔 테라스가 꼭 있어야 하고, 광장이나 테라스, 길가 카페의 노천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햇빛을 받으며 수다 떠는게 이탈리아인의 아주 아주 중요한 일상. 햇빛과 비타민d에 환장하는 내겐 정말 살기 좋은 곳. 게다가 옥상에선 건물의 하얀 옥상과 바다 아주 끄트머리, 광장이 훤히 보인다. 처음 예약할 때 너무 싼데다 후기가 없어서 걱정했는데 정말 최고로 운 좋은 날이다.

숙소가 바다 앞이라 좋은 점은 도둑맞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핸드폰이고 뭐고 다 집 안에 던져 놓고 피자 한판 사서 해변으로 갔다. 확실히 이탈리아에서 먹는 피자는 도우부터 다르단걸 알겠는데, 이탈리아 남부는 비건 문화가 정착하지 않아 항상 ‘빼주세요’ 하다 보니 뭔가 비는 맛이다. 그것은 바로 밀가루맛. 결국 내가 하는 이탈리아 음식이 더 맛있다는 결론에 이르러 계속 요리해먹고있다.

내일 바람이 불거라더니 오늘은 조류도 세다. 전에 폴리냐뇨에 왔을 때는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는데, 아름다운건 똑같지만 이번엔 계속 조류에 휩쓸려 다니다 여기저기 상처만 났다. 그래서 수영도 신나게 못하고 피신. 다만사람들이 계속 절벽에서 다이빙을 하는데 그게 너무 하고싶었다. 한참 다이빙하는 사람들 옆에서 구경만 하다가 결국 나도 소심하게 다이빙했는데, 나름 멋지고 자연스럽게 들어갔으나 팬티 다 벗겨지고 물 엄청 먹고 조류에 휩쓸려서 이대로 죽는건가 했다. 영이가 건져올려줄 때는 엄청 절박했는데, 처절하게 올라와서 물어본 것: 나 멋졌어? (멋졌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와 그릇과 숟가락을 들고 집 앞 비건 프로즌 요거트집에 갔다. 전 세계적 문제지만, 이탈리아도 역시 일회용 플라스틱을 너무 많이 쓴다. 요거트 아이스크림은 흔히 플라스틱 숟가락을 사용하니 대처 가능하다 해도, 예상치 못하게 딸려오는 플라스틱도 너무 많다. 일회용 쓰레기를 최소화 하는 내 삶의 방식은 물론 환경 보호, 생태계 보호를 위해서지만 소비자로서의 부당함에 기반하기도 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강제로 소비하게 하는 것을 부당하다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산 것을 플라스틱에 담아주는 상인들에게 ‘플라스틱은 사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다. 그럼 항상 ‘아냐 이건 공짜야’ 라는 대답을 듣는다. 이게 일회용품 문제의 핵심이다. 대부분이 일회용품을 ‘공짜’ 혹은 그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일회용품으로 인한 환경 문제가 대두된다 한들 소비량이 쉽게 줄어들지 않는 거다. 일회용품은 공짜 혹은 헐값이 아니란 걸 모두가 아는 데에 근본적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일회용품의 가격은 생산 비용으로만 책정되고, 처리비용 즉 사용 후 버려져 해결되지 않는 ‘해결 비용’은 판매가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할때 장바구니는 물론이고 푸드 컨테이너와 식기 등 일회용품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을 들고 다닌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환경에 해가 되는 것, 동물을 해치는 것 등-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와 기업에 대처하는 작은 방안이다. 그렇게 가져간 그릇에 메론, 블랙체리 소스, 피스타치오, 민트를 토핑으로 얹은 두유 프로즌 요거트를 먹었고, 오가닉 샵을 찾으러 돌아다녔는데 못 찾은 대신 과일가게를 찾아 수박, 자두, 복숭아를 샀다. 아, 광장에 열린 플리마켓에서 비건 팜오일 프리 천연비누도 샀다. 그렇게 한량처럼 계속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녔다.


해 질 때가 되어 집 앞 절벽 난간으로 의자 두개와 반 가른 수박, 숟가락, 복숭아를 들고 피크닉을 나섰다. 절벽 건물들 바로 뒤로 빛나며 지는 해가 너무 장관이어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둘 다 과일 말곤 아무것도 안들고 나왔다. 그래서 눈으로 오래 기억하자, 말했다. 오래오래 기억해야지.

집으로 돌아와 간식으로 라면을 끓여먹고, 해가 완전히 져 가로등이 도시를 비추는 전부가 될 때까지 4층 테라스에서 일기도 쓰고, 광장을 메운 사람들 구경도 했다. 아마 귀찮아하는 영이를 데리고 또 밤산책을 해야한다며 나섰고. 여긴 정말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사람이 많아진다. 11시가 넘어 돌아왔는데 돌아올 때는 올드타운 골목골목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걷기도 힘들 정도였다. 이탈리안 라이프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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