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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Jun 25. 2019

미로보다 더 미로같은 올드타운, Turi

2019.06.22


투리는 언급 했듯이 정말 작은 마을이라 요리하고 책읽고 낮잠자는 것 외엔 할 일이 없고, 아침에 일어나면 일찍 폴리냐뇨로 갔다가 더운 낮시간을 보내고 저녁엔 동네를 돌아다니는 뭐 그런 하루를 보내려고 했다. 폴리냐노 왕복이 버스로 한시간이란 정보도 미리 찾아보고 왔으니. 근데 문제는 배차시간이었다. 차가 없어. 하루에 2번정도 왔다갔다 하는데, 아침 7시와 저녁 7시, 뭐 이렇다. 날도 더운데 여기서 뭐하냐는 생각에 답답해졌다. 왜 내륙으로 들어왔지, 왜 이런 교통 구린 곳으로 들어왔지, 뭐 이런 생각들. 영이는 여전히 아파서 계속 자고, 나 혼자 잘 놀아야 하는데.

집이 좋으니 그냥 타협하고, 집에서 뒹굴기로 했다. 넷플릭스 보다 보니 이전의 짜증은 다 밀려가버리고, 먹고 먹고 넷플릭스 보다가 먹고 먹고 하는 여유로운 낮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몸이 좀 좋아졌다는 영이를 데리고 간만에 운동을 해야겠다고 러닝하러 나갔는데, 우리 둘 다 십분도 채 못 뛰고 산책으로 종목을 바꿨다.

여기 집들은 다 모양과 색이 다를 뿐더러 현관문마저도 다 특이한 모습으로 다르다. 그러면서도 서로 완벽히 조화를 이룬다. 너무 낡지도 않고, 새것도 아닌 오밀조밀 집들. 그리고 겸사 겸사 산책한 올드타운은 감동 그 자체였는데, 사람 한 명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들에 온통 다른 키와 크기, 모양, 색으로 무심히 붙박힌 문들, 살짝 때 탄 레이스 커튼들, 낡고 낡은 계단, 유일한 초록인 화분들. 벽돌 터널을 지나 등장하는 문, 좁은 골목만큼 좁은 하늘의 푸른 색.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걸었는데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다. 미로보다 더 미로같은 곳이다.

그나저나 여긴 체리가 유명한 곳이라면서 체리 꼭지도 구경하질 못했다. 근데 호스트가 정말 한바구니의 체리를 갖다줬고, 응접실에 앉아서 쇼파에 다리를 올리고 2kg은 되어보이는 체리를 영이랑 다 먹어버렸다(체리똥 쌌다). 체리 정말 좋아. 얇고 약간 질기면서 톡 터지는 막으로 싸여있는 것도 좋고, 특유의 달콤함도 좋고, 한입에 쏙 들어오는 것도 좋고.

밤 열한시에 출출하다며 남은 두유와 뇨끼, 야채 등을 듬뿍 넣어 비건 뇨끼 크림 파스타를 해먹었다. 뇨끼 너무 맛있어. 다만 뇨끼는 기본 레시피가 닭알을 포함해서 비건으로 찾기가 힘들었다. 이탈리아 대표 음식이지만 처음 먹어본 음식. 그것도 내가 만든 뇨끼 크림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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