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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Oct 02. 2019

내 영원한 약점 당신은

엄마

창 밖으로 나, 외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흘려보내며 엄마 생각을 했다. 어둠 속 아주 작은 촛불의 일렁임 앞에 앉아 성경을 외던 엄마와, 옆에 누워 그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던 나. 엄마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사실은 그저 시였을 뿐인데. 내가 뱉은 시는 웅크려 포복하며 창틀을 넘고 창가 나뭇잎을 타 엄마의 성경이 됐다. 대낮의 케언즈, 수풀에 둘러싸인 마법의 창틀.

엄마로부터 도망치고 몇달이 지나고 나서도 증오의 감정은 영원할듯 했다. 그런 내 목소리가 엄마의 목소리로 돌아오다니, 내 배꼽은 역시 엄마를 향해 있단 걸 알아버린 때였다. 결국 보이지 않는 탯줄로 우리는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연결되어 있는 걸까, 엄마 몸을 빌어 난 나는 엄마 목소리를 가졌어. 이 탯줄을 난도질 해 끊어버릴 순 없을까.

며칠 지나지 않아 가족들이 날 쫓는 꿈을 꿨다. 꿈 속 나는 칼을 들고, 그들에게 휘두르지 못해 날 죽이지 못해 결국 아빠에게 칼을 건넸다. 당신의 딸로 태어난 나를 증오해. 태어나게 한 당신이 날 죽여. 당신의 피가 흐르는 내가 끔찍해. 베갯잎이 다 젖도록 울고 소리지르다 스스로 깼다.

할머니의 장례에 왔다. 할머니의 사진 앞에 국화를 놓으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어쩐지 엄마가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할 때마다 슬프지 않아도 가슴이 메고 울고싶지 않아도 울었다. 우리의 눈물샘은 호스를 달아놓은 것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배를 맞대지 않아도.

엄마의 울음은 장례절차 내내 시도때도 없이 고조됐다. 그럴 때마다 그 울음이 내 울음인 것처럼 나도 자꾸 울었다. 그러면서도 그 울음이 내 것이 아니란 걸 들킬까 눈을 수없이 깜빡거리며 눈물을 감췄다. 고장난 정수기처럼 울어대는 엄마 옆 나는, 새는 물을 받는 새는 바가지처럼.

쥐어 짜 봐야 눈물 한방울 새지 않을 정도로 할머니나 이 정수기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 가슴에 ‘상주’라고 쓰인 하얀 뱃지를 달고 어깨너비로 다리를 벌려 선 채 털털대는 정수기를 막아섰다. 할머니의 사진을 모시고 관을 들었다. 정수기는 화장터로 향하는 관 모서리를 10초나 만져봤을까, 직원들의 만류에 허락되지 않은 마지막을 놓아 닫힌 문 앞 바닥만을 바라보며 멈출 줄 몰랐다.

“난 이제 엄마라고 부를 사람이 없잖아. 50년 넘게 엄마라고 불렀는데.” 하던 엄마는 그렇게나 잘 부르는 찬송가도 한 구절 부르지 못하고 엄마, 엄마, 하며 털털대기만 한다. 엄마가 넘겨준 악보를 엄마 대신 부르는 나는 마디마다 쉼표마다 코 먹는 소리를 하며 엄마와 호흡을 맞췄다. 자식은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라는데, 나는 엄마가 내 아킬레스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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