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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Sep 23. 2019

겨울 호주엔 코알라도 상어도 있어

나는 둘 다 못봤지만

끝없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숲을 지나며 우리는 아주 작은 소리나 움직임에 기민하게 숨 죽였어. 메아리도 들리지 않는 숲 속에서 무슨 얘기를 그렇게 했을까. 코알라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해서는. 우렁찬 우리 웃음소리를 듣고 코알라든 캥거루든 다 도망갔을테지.

이질적인 숲 속 시멘트 길이 사라질 때 푸른 나비들이 날아들었어. 깊은 바다의 굴곡보다 더 푸른 날갯짓으로 우리 손 끝에서 머리로 하늘로. 우리가 한발자국 뗄 때마다 나비들은 마법 세계의 문지기처럼 우리의 눈 앞을 가득 메우며 점점이 퍼져 나갔지. 나비 군중들에 둘러싸여 묘기를 부리듯 거칠게 엉킨 나무줄기를 헤치며 걸었어. 나비들은 그런 우리에게 보내는 박수인 듯 가까이서 멀리로, 멀리서 가까이 날아들고 사라졌지.

해변에 발을 디디기 전까지만 해도 눈 앞에 해변이 있는 줄도 몰랐어. 그런 숲이었어. 시멘트 길이 난 숲을,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동시에 눈으로 코알라를 찾으려고 샅샅이 뒤지며 걷다 보면 시멘트 길이 끝나고 나비의 숲이 시작돼. 푸른 나비에 둘러싸여 경이로움에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또 걷다 보면 갑자기 나무 사이로 해변이 등장해. 수평선까지 곧게 뻗은 해변과 바다는 숲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푸른 발 아래 은빛 나비들을 숨겨.

해변가 잠든 나무의 몸에 등을 부비고 해변가 따뜻하게 데워진 모래에 엉덩이를 부비며 앉을 자리를 만들었어.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오늘 아침 대충 싸온 샌드위치와 검은 텀블러 안에서 이미 뜨거워진 와인을 먹고 마시고, 바나나를 까먹고는 숲의 방향으로 던져버리고, 서로의 팔을 베고 까무룩 잠들었다 어쩐지 같이 눈을 뜬다. 눈을 뜨면 뭘 해야할지 꿈에서 약속한 것처럼 어쩐지 우리는 말없이 훌렁 훌렁 옷을 벗고 바다로 뛰어들어.

코알라는 못 만났지만 상어는 만날 수 있겠지, 두시간이나 걸어왔는데.
상어는 못 만났지만 가는 길은 삼십분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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