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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Feb 10. 2023

집과 차


이 모든 게 내꺼라니. 비싼 야채와 맛있는 비건 냉동식품으로 가득 찬 냉장고나 온갖 무농약 곡류와 간식과 올리브 캔 같은 걸로 가득 찬 찬장 같은 것들이 다 내꺼라니. 수십권의 책이 다 내꺼라니. 엄마 품보다 편한 돌아가는 쇼파도 가로로 누울 수 있는 침대도 무풍 에어컨도. 창 건너 오름 뷰와 창가 앞 책상에 앉아 듣는 빗소리와 빗소리 같은 타이핑 소리까지 모두 나만의 것이라니. 내 세상을 만들어 두었다. 특히 소변을 서서 싸는 남자는 영원히 출입 금지.


여기선 상상을 많이 하지만 차에서만큼 많이 하지는 않는다. 차에선 주로, 오늘 만난 사람에게 내가 어떤 말실수를 했는지, 오늘 만날 사람과 어떤 이야기를 하거나 뭘 할지, 혹은 옛날 생각을 한다. 옛날에 했던 잘못과 실수와, 나를 떠나간 사람들과. 여기 월세만큼 차 할부 빚을 갚지만 차는 너무 많은 기억과 생각으로 차 있다. 매일 여길 청소하고 즐거워 하지만 새 차엔 온갖 쓰레기와 먼지만 가득하다. 차는 언제나 흐르는 방향과 목적이 있지만 여긴 멈춰 있다. 주차를 잘못해 긁히는 일도 없이. 나를 시험하지 않고 고여 있게 한다. 내 것에 완전히 둘러싸인 채 이대로 영원히 고여 있고 싶다. 내가 차를 타고 다니며 돈으로 낳은 내 것에겐 잘못하지 않고 그래서 비난 받지 않고 내 뱃속에 들어오든 나를 감싸든 모두 나를 위해 이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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