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 Feb 10. 2023

여행의 모양

이전 내 여행은 어떤 모양이었나. 모양이 있었던가. 불안의 구름을 머리 위에 띄우고 해변과 강과 정글을 찾아 다니며 무얼 했던가. 쓰고 읽고도 시간이 가지 않는다고 느낄 때마다 구름은 덩치를 키웠다. 더딘 시간은 더운 바다와 같았다.


오랜 여행의 습관으로 자꾸만 통장 잔액을 확인한다. 수백만원을 벌고도 80만원을 벌던 습관을 잊지 않았다. 그때의 마음만은 잊었다. 돈도 사람도 없이 시간을 보내는 마음이라든지. 전체적 불안은 줄은 듯 하지만 돈 쓰지 않고 남의 도움 받지 않고 시간 보내는 일이 불안하다.


몇년 전, 여행의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불안 속에선 고요히 시간을 흘려 보내는 법을 배웠다. 아무데서나 낮잠을 자고 책을 읽고 그저 일렁이는 마음이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다시 잠잠해지는 데 며칠이 걸린다. 다시 수영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그냥 침대에 누워 일렁이는 불안함을 바라만 보며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다시 수영할 수 있는 날이 온다. 저 멀리 가지 않아도 좋았다. 해변가 가까운 바다를 위로 옆으로 아래로 빙글빙글 돌면서, 바닷속 햇빛을 매일 처음 보는 신기한 것을 보듯 손바닥에 올려보고 배에 올려보고 발등에 올려보면서, 몇시간이고 시간은 갔다. 그리고 밀려오는 낮잠조차도 수영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하루도 빠짐 없이 바다에 들어갔다. 더 깊이 들어가야만 했다. 이퀄라이징이 안 돼서 마스크에 눈물이 찼어도 점심 먹고는 다시 더 깊이 들어가야만 했다. 누굴까, 나를 바다에 밀어 넣는 이는.


이안류를 타고는 어디든 갈 수 있다. 저 멀리로. 다른 섬에 닿을 때까지는 그저 기다림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집과 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