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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Feb 10. 2023

캐서와리 협곡의 장마

하루는 고작 8시간 남짓이었다.


나머지 16시간동안 우리는 비 새는 천으로 만든 관짝 안에 딱 맞게 누워 잠시 죽은 채 물 속을 굴렀다. 한번도 깨지 않고.


눈을 뜨면 머리도 발도 마르지 않는 하루의 어딘가였다. 8시간 남짓 그 동안 거대한 캐서와리 꽁무늬를 쫓아 다니고 악어의 밥이 되는 상상을 하며 속이 전혀 보이지 않는 파도를 맞고 세탁기의 동전 구멍에 동전 대신 나뭇가지를 쑤시고 딱 4시간만 여는 슈퍼에서 비를 피하고 거대한 봉지에 담긴 감자튀김을 먹으며 한 칸이 떴다 사라졌다 하는 와이파이에 기대 다음주 이야기를 했다. 비가 그치고 나면 어디로 갈까.


우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잤다. 한번은 한 칸 와이파이의 요행으로 다운받은 심슨을 보고 잤다. 평소처럼 텐트 안에서 꼼지락 꼼지락 서로 만지작 대지도 않고 잤다. 하루 중 16시간을 어둠에 담아 두었다. 물에 젖은 침낭을 튜브 삼아 밤새도록 아무것도 없는 꿈 속에 머물렀다. 꿈 속에서 조차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빗속에서 우리는 계속 잤다. 하루가 짧고 밤이 긴 일주일간. 무엇도 말리지 못하는 달이 뜨는 협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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